[LPGA] ‘세리 키즈’ 김인경, 세리를 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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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이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김인경은 지난해 10월 롱스드럭스 챌린지 대회 이후 7개월 만에 통산 2승째를 거뒀다. [스프링필드 AFP=연합뉴스]

프로골퍼 김인경(21·하나금융). 키 1m58cm의 이 ‘땅꼬마’ 처녀를 만난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샷에 놀라고, 또 하나는 좀처럼 기가 죽지 않는 당찬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똑순이’란 별명도 그래서 얻었다.

8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팬더크리크 골프장(파72·6746야드)에서 끝난 LPGA투어 스테이트팜 클래식은 김인경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전날까지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4위를 달렸던 김인경은 마지막 날 7언더파를 몰아쳐 합계 17언더파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상금은 25만5000달러(약 3억2000만원).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은 박세리(32)도, 신지애(미래에셋)도 아니었다. 전날까지 선두를 1타 차로 뒤쫓던 신지애는 이날 2타를 줄이는 데 그쳐 12위로 내려앉았다. 박세리는 1~3번 홀 연속 버디에 이어 16번 홀에서도 한 타를 줄여 2년 만의 우승을 노렸지만 한 타 모자란 2위를 했다. 반면 김인경은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 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 등 북구의 장타자들과 같은 조에서 대결을 펼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페테르센이 4타를 줄이는 동안 김인경은 정교한 샷을 앞세워 7언더파를 몰아쳤다. 7번 홀 보기가 옥에 티였을 뿐 이날 무려 8개의 버디를 잡아냈다.

1988년생인 김인경은 박세리가 98년 US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대표적인 박세리 키즈. 이날 우승으로 자신의 우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통통 뛰었다.

“페테르센 등 장타자들과 맞대결을 펼쳤지만 전혀 떨리지 않았어요. 페어웨이만 지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

김인경은 또 “17번 홀 버디를 잡아낸 뒤 우승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7번 홀에서 워터해저드에 공을 빠뜨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인경은 지난해 10월 롱스드럭스 챌린지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뒀던 투어 3년차. 신지애·오지영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올 시즌 세 번째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김철진(56)씨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에 입문한 그는 한영외고 1학년이던 2005년 골프 유학을 위해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처음엔 말을 하기가 무서웠어요. 영어를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3년 동안 한국 드라마는 일절 안 보고 미국 영화와 드라마만 봤어요. 한국 노래도 끊고 미국의 MTV만 줄기차게 봤지요. 그랬더니 귀가 뚫리고, 입이 열리더군요.” 좋아하는 가수는 비틀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얼마 전 기타를 배워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정도는 가볍게 연주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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