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화두서 배우는 지혜로운 여름 피서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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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한데 모아 보자-. 경주 기림사 여름캠프에 참석한 아이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명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에서 일반인들이 참사랑 수련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삼성지구환경연구소는 15일 올해 최악의 폭염을 우려하며 '반바지 출근' 을 권고했다. 반바지 출근은 일부 벤처기업에서는 허용하고 있지만 일반 직장에선 아직 생각하기 어렵다. 이를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중국 선사인 용아거둔(835~923)은 '바짓가랑이를 들어올려 더위를 잊는다'고 했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대의 최고 피서법은 옷자락을 걷어올려 흐르는 땀을 식히는 것이었다. 찜통더위라고 속을 끓이면 자기만 더 더워지는 법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의 계절, 일상의 중압에서 해방되는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그러나 휴가라고 마냥 즐거운 건 아니다. 우선 불황으로 가벼워진 주머니가 걱정된다. 또 숨이 막히는 교통체증은 어떤가.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더위의 근원을 쫓아내는 방법을 옛 조사들의 화두를 통해 알아본다. 피곤한 여행길, 한마디씩 떠올리면 몸도 마음도 시원해질 것이다.

◇추위와 더위는 없다="어디로 가야 춥지도 덥지도 않습니까.""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그런 데가 어느 곳입니까." "추우면 얼어 죽고 더우면 타죽는 곳이다." 중국 선사 동산양개(807~869)가 남긴 말이다. 우문현답 같지만 덥고 추운 것은 우리의 분별심에서 생긴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그 가리는 마음만 없으면, 즉 세상과 하나가 되면 더위도 추위도 없다. 나누고 쪼개니까 덥고 추울 뿐이다.

'불구덩이에 들어가라'라는 공안(公案)도 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뿌리를 캐들어간 표현이다. 설봉의존(822~908) 선사는 "불타는 선방에 장작개비를 더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고기다! 고기=당나라 시대 마곡(생몰 미상) 스님이 물고기 떼를 보고 "고기다! 고기"라고 외쳤다. 곁에 있던 단하(739~824) 선사가 "천연덕스럽구나"라고 거들었다. 흔하디 흔한 물고기를 보고도 감탄사를 토해내는 천진함이 느껴진다. 가식과 꾸밈이 없는 동심의 경지. 산이든, 바다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남의 눈치보지 말고 소리를 질러보자.

송광사 방장 보성(76) 스님은 "비 오는 날엔 우산 장수 딸만 생각하고, 갠 날엔 나막신 장수 딸만 생각하라"고 했다. 우산과 나막신을 파는 두 딸을 둔 노파가 날씨를 걱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선(禪)은 철저한 낙천성을 추구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이가 있고, 바닷가에서 목말라 죽는 사람이 있다.

◇매미는 어디로 갔는가=중국 투자(819~914) 선사가 매미 껍질을 보았다. "껍질은 있는데 매미는 어디로 갔습니까"라는 시자의 물음에 스님은 껍질을 귀에 대고 서너 차례 흔든 뒤에 매미 소리를 냈다. 그 순간 시자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매미 한 마리에서도 생사를 뛰어넘는 자연의 이치를 읽었던 것. 정신만 차리면 꽃 한송이, 모래 한알에서 우주를 찾을 수 있다.

경남 산청군 해동선원 성수(81) 스님의 체험담. 1950년대 깊은 토굴에서 정진하던 스님은 나물 캐러온 아주머니에게 '한방' 맞은 적이 있다.

"조용한 산에서 공부 좀 하겠다"는 스님에게 촌부(村婦)는 "새소리.물소리는 시끄럽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왁자지껄한 바닷가도 훌륭한 선방이다. 중국 운문(864~949) 선사는 "산에서도 자유로이 배회하고 강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사람"을 설파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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