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집값 ‘지하실’ 탈출 조짐 … 경기 부양 자금이 ‘펌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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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의 대표적 주거지인 왕징(望京).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의 가오보(高博·22)는 요즘 일할 맛이 난다. 지난해 ㎡당 2만 위안(약 360만원)까지 치솟았던 아파트 값이 올 초 1만4000위안까지 떨어지면서 뚝 끊겼던 매매가 최근 되살아나고 있어서다. 그는 “가격이 ㎡당 1만6000위안 선을 회복하면서 하루에도 5~6명씩 주택 구입 문의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많이 떨어져 바닥권이라는 공감대가 생기고 있는 데다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푼 유동자금 일부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세계 부동산 시장에 해빙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각각 두 달 연속 집값이 오른 한국과 중국이 대표적이다. 일본·영국도 하락이 멈추지 않았지만 점점 낙폭을 줄이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를 불러온 미국 주택시장에서도 일부 긍정적 지표가 나오기 시작했다.


◆집값 ‘빙하시대’ 끝나나=각국의 부동산 통계는 보통 한두 달씩 늦게 발표된다. 일부 국가에선 한두 달 시차가 있는 통계에서도 회복 조짐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회복세가 특히 빠르다. 지난해 8월부터 7개월 연속 떨어졌던 중국 도시지역 집값은 3월(전월비 0.2%)과 4월(0.4%) 연속 상승했다. 또 상하이의 5월 신규 주택 판매는 21개월 만의 최고치 다.

주시쿤(朱希昆) 우리투자증권 베이징 리서치센터 소장은 “올 하반기에 집값이 진정세를 보이다가 내년 초부터 본격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도 회복이 빠른 나라다. 6개월 연속 떨어졌던 전국 집값은 4, 5월 두 달 연속 소폭(전월비 0.1%)이지만 올랐다. 특히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재건축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서만 8~16% 뛰었다.

일본은 아직까진 하락세다. 그러나 수도권 맨션(아파트) 값의 4월 하락률은 지난해 11월(전월비 -1%)의 절반으로 줄었다. 반면 4월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9% 늘었다. 도쿄 신주쿠(新宿)의 부동산 업자인 사이토 마사루(46)는 “시장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현재는 새 집과 낡은 집 사이에 가격 차가 벌어지는 단계”라고 말했다. ‘유럽의 문제아’로 꼽혔던 영국도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 하락세가 지속되고는 있지만 하락률(전월비)은 2월 -2.2%에서 4월 -0.3%로 확 줄었다. 특히 런던 집값은 두 달 연속 올랐다.

◆‘봄맞이’ 아직 일러=세계 부동산 시장이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하지만 본격 상승을 얘기하긴 아직 이르다. 각국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이번 위기를 불러온 미국 주택시장이 나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주택가격지표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케이스-실러 지수’는 2006년 7월 고점에 비해 32.2% 떨어진 상태다.

물론 미국시장에서도 긍정적인 지표가 하나 둘 나온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4월 잠정 주택판매는 한 달 전보다 6.7% 늘어 7년 반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압류 주택이 늘어나면서 헐값 매물이 많이 나온 영향이 크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지금은 값싼 집만 잘 팔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인 서강대 김경환(경제학) 교수는 “ 8월은 돼야 미국 주택 시장이 바닥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전했다.

김선하 기자,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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