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르는 유로시대] 2.달러경제와 버거운 힘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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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 기업이 호주에 반도체를 수출하면서 결제통화를 미 달러가 아닌 유로로 했다' . '각국은 미 달러와 함께 유로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이며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8백억달러+7백억유로로 표시된다' .

21세기 어느날의 가상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는 유로 출범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유럽 각국 지도자들의 꿈이다.

유로는 미 달러에 버금가는 안정적이고 강력한 통화가 될 수 있을까. 외형적으로 보면 유럽연합 (EU) 15개국의 경제규모는 미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96년 현재 EU 15개국의 국내총생산은 8조달러로 미국의 7조2천억달러를 능가하며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9%로 미국의 19.6%를 앞선다.

세계 외환거래에서 차지하는 몫도 미 달러가 41.5%, EU 주요통화의 거래량 합계가 29%다.

그러나 2백년 이상 단일경제권으로 움직여온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 미국의 달러와 별개의 경제주체였다 인위적 통합을 추진하는 유로의 힘이 같을 수는 없다.

96년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은 61.5%로 마르크.파운드 등 EU 통화 총합 (20.1%) 의 세배가 넘을 만큼 달러의 기득권은 확고하다.

따라서 유로의 성패는 EU경제가 단일통화 도입 이후 얼마나 빨리 안정을 이룰 수 있느냐에 달렸다.

낙관론자들은 거대 유로의 영향력이 이미 독일경제권에 통합되고 있는 동구와 유럽의 입김이 강한 북부아프리카 등지로 쉽사리 퍼져나가고 점차 세계 각 지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 단일통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경제통합에 따른 투자.교역의 비용절감 효과를 꼽는다. 이같은 효율성의 증대가 유로의 사용을 부추기고 EU지역으로 자본집중을 불러일으켜 중장기적으로 유로는 달러와 함께 세계 양대 통화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우선 EU국가들의 경제력 격차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세계 3, 4위의 경제대국 독일·프랑스와 국민소득이 이들의 절반에 불과한 그리스·포르투갈 등을 단일 경제권으로 묶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이밖에 ▷두자릿수에 이르는 실업률 ▷사정이 다른 각국의 경제를 유럽중앙은행 (ECB) 한곳에서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 ▷영국 등 유로 초기 참여를 유보한 국가들의 행보 등도 유로의 순조로운 항해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유로의 성공 여부는 결국 EU의 향후 경제성장 여부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최근과 같은 안정적 경제호황이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유로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윤석준 기자

◇1유로=약1.1달러

2002년 1월1일을 기해 '유로랜드' 11개국에서 전면 유통되는 유로는 지폐와 주화 모두 이미 디자인이 끝나 제작을 앞두고 있다.

지폐는 5, 10, 20, 50, 1백, 2백, 5백유로 등 모두 7종이 제작된다. 돈 단위가 커지면 크기도 커져 맹인들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발권은 유럽중앙은행 (ECB) 소관이지만 실제 조폐는 다음달부터 각국 중앙은행이 담당한다.

어디서 인쇄하더라도 완벽하게 동일하며 제작 국명은 지폐상에 일절 표시되지 않는다.

주화로는 1, 2유로 등 유로단위 두 종류와 유로의 1백분의1인 센트를 단위로 1, 2, 5, 10, 20, 50유로센트 등 모두 8종이 선보이게 된다. 각국이 제작한 유로는 ECB 통제 아래 각국 중앙은행이 책임지고 보관하다 2002년 새해를 기해 각국의 기존 통화와 교환된다. 유로의 통화가치는 오는 12월31일 최종 확정된다.

현재 유럽통화체제 (EMS) 내에서 통용되는 유럽통화단위 (ECU) 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고 보면 1유로는 대략 1.1달러 (1천5백원) 선이 될 전망이다.

달러보다 약간 세다고 보면 된다. 내년부터 유로랜드를 여행하면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경우 본인이 원하면 유로로 값을 따져 대금을 치를 수 있다. 유학경비의 유로 송금도 가능해 진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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