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선생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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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16면

경기가 한창 무르익어 팽팽한 외줄 위에 올라가 있는 듯 긴장감이 느껴질 때다. 입엔 침이 마르고 손엔 끈적한 땀이 느껴진다. 그때쯤 한쪽 벤치에서 “타임!”을 요청하고 나온다. 이윽고 마운드에서는 작전회의가 열린다. 투수 교체, 또는 주의 환기를 위해서다. 이때 낯선 인물이 등장한다. 그에겐 유니폼이 어색하다. 때론 트레이닝복 차림일 때도 있다. 그라운드에 이방인 같다. 그는 외국인 코치를 위한 통역이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12>

통역이 외국인 코치와 함께 마운드에 오르는 풍경은 이제 낯선 게 아니다. 처음엔 팽팽한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도 같았다. 군인들의 전쟁터에, ‘양복 입은 신사가 신사협정서를 들고 나오는 것 같은?’ 어색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젠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런 팀이 많아진 거다.

지금까지 올 시즌 최고의 깜짝 스타라면 양현종(KIA)을 고르겠다. 그는 3일 현재 평균 자책점 2위(2.23·1위 SK 송은범 2.17)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류현진(한화)-김광현(SK)-봉중근(LG) 등 ‘세계적인’ 왼손 투수들이 즐비하다. 그 틈에서 가장 좋은 왼손 투수 방어율이 현재까지는 양현종 차지다. 그가 올해 프로야구 전체를 대표할 수 있게 된 비결 뒤엔 일본인 간베 도시오 투수코치가 있다. 양현종은 “겨울 훈련 내내 제구력을 다듬었다. 같은 왼손 투수 출신 간베 코치가 큰 도움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은 최근 들어 ‘6월 이후 농사’에 강했다. 선동열 감독은 올해도 여름 이후 삼성이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믿는 건 선수단 전체의 체력이다. 지난해도 삼성은 순위 판도의 고비가 된 여름을 잘 넘겼고 포스트시즌의 열매를 땄다. 여름에 강한 삼성의 비결은 두 명의 일본인 트레이닝 코치(하나마쓰·고지마)다. 올해는 타격코치도 일본에서 데려왔다. 나가시마 코치가 타격에 합류한 뒤 만들어 내고 있는 작품은 10년차 강봉규다. 그는 양준혁·최형우·박석민 등을 제치고 팀 내 타격 1위(0.327)다.

시즌 초반 9연승의 돌풍을 일으킨 LG의 힘에도 올해 합류한 일본인 코치가 있다. 김재박 감독은 5월 중순 한 인터뷰에서 “특히 일본인 다카하시 투수코치가 와서 젊은 투수들을 (선발이 아닌) 뒤로 가져가 특성을 잘 살린 것이 성공의 이유라고 본다” 말했다.

3연패에 도전하는 SK에는 세 명의 일본인 코치가 있다. 그들은 이미 3년째다. SK가 가장 강한 ‘디테일’이 그들에게서 나온다. 데이터를 읽고 상대를 분석하고 게임을 풀어 나가는 ‘수싸움’까지 강해지는 바탕이다. 김성근이라는 ‘거장’이 리드하고 있는 SK는 외국인 코치 의존도가 가장 큰 팀이다. 다른 팀이 외국인 코치를 ‘과외 선생님’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SK는 2군 종합코치도 일본인 쇼다 코치다. ‘기본부터 가르치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외국인, 특히 일본인 코치가 국내 프로야구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은 뭔가. ‘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나라’ 대한민국에 토종 야구 지도자가 모자란다는 거다. 사람은 있지만 훌륭한 사람은 없다는 거다. 나날이 늘어 가는 선수들의 기량에 발맞춰 줄, 그리고 그 선망의 눈높이를 맞춰 줄 ‘우리 지도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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