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묵직한 질문, 그리고 빛나는 디테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7호 06면

사람이 속물이 되는 순간은 부모가 되는 순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파는 것이 부모니 말이다. 좀 과장하자면 자식 사랑은, 때로 인류가 범하는 모든 죄의 가장 좋은 면죄부일 수도 있다.

영화 ‘마더’, 감독 봉준호, 주연 김혜자.원빈, 18세 관람가

봉준호 감독의 ‘마더’도 그렇게 말한다. ‘전원일기’ 등에서 인자한 한국 어머니의 전형이 돼 온 김혜자는 자식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야수적 엄마로 변신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엄마는 모든 비밀을 감춘 제 손을 펼쳐 바라본다. 감독에 따르면 김혜자가 “접신의 경지”로 연기한 장면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 혹은 사랑의 이름으로 제 새끼를 챙기는 이기적 모성이 죄악일 수 있음을 보여 준, 강렬한 장면이다.

‘살인의 추억’ ‘괴물’로 연속 메가 히트작을 낸 봉 감독은 ‘마더’에서 한 걸음 더 진전된 작가적 역량을 펼쳐 보였다. 웰메이드 블록버스터(‘괴물’)로 최다 관객 동원을 기록한 흥행 감독의 차기작으로는 의외라 할 만큼 불편한 진실에 악착같이 현미경을 들이댄 영화다. 그의 영화 중 가장 암울하고, 오직 망각 외에는 아무 해법도 없다는 듯 출구를 닫아 버린 디스토피아적 영화다.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아들(원빈) 대신 진범을 찾아 나서는 스릴러 형식이지만 진범 찾기나 반전에만 집중하는 것은 영화의 풍성한 재미를 깎아 먹는 길이다(물론 영화에는 김혜자가 아슬아슬하게 작두 써는 장면 등 스릴러적 긴장감이 넘쳐 난다). 영화는 가장 순수한 관계로 칭송되어 온 어머니와 아들,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치켜세워진 모성신화를 벗겨낸다.

공안정국이던 1980년대 치안의 부재와 연쇄살인(‘살인의 추억’), 국가 보호망 미비속 가족 단위의 사투(‘괴물’) 같은 사회적 맥락을 언급했던 전작들에 비해 원초적 관계의 심연을 깊이 파고든다. 영화의 더 큰 매력 중 하나는 이처럼 애증이 엇갈리며 금기의 선을 아슬아슬 넘나드는 모자 관계가 영화 속에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속 단서들을 가지고 관계의 실체를 추측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철저히 관객의 몫이다. 김혜자는 이를 가리켜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영화, 관객이 가진 것만큼 보이는 흥미로운 영화”라고 소개했다.

엄마의 심리 상태를 보여 주는 도입부와 엔딩의 춤추는 장면은 이병우 음악감독의 슬픈 선율과 함께 이 영화 최고의 절창으로 꼽힌다. 첫 장면, 혼자 춤추던 엄마가, 관광버스 막춤을 추며 동네 아줌마들과 한 덩어리로 얽히는 엔딩은, 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엄마의 비극으로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모자라지만 어떤 땐 총명해지기도 하는 원빈의 캐릭터는 봉 감독 영화에 빠지지 않는 ‘동네 바보’ 역할. 약자에 대한 연민, 일관된 서민성을 상징한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영민한 연출력이 빚은 명장면들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형언할 수 없는 연기’라는 영화 속 지문에 도전한 김혜자는 말 그대로 ‘형언할 수 없는 연기’를 펼쳐 보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