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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중국통화의 불안한 안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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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래로 아시아국가들의 통화가치하락이 심해지자 중국통화도 결국 평가절하되는 게 아닌가 하고 예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부 국제 신용평가회사들도 중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는 사례가 생겼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중국 정책당국은 자국 (自國) 통화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고 충분한 방어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중국 통화가치 수호의지는 현재에도 엄청난 국제수지흑자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악화나 중국통화의 평가절하가 홍콩달러의 추가약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마지막 단계에 있는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협상에 미칠 악영향, 모처럼 안정돼가고 있는 인플레에의 악영향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중국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한결 그럴듯하게 보인다.

또 중국은 통화위기를 맞는 다른 아시아국가들과 달리 통화가치 수호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3%, 경제성장률의 8~9% 지속, 지난해말 현재 1천4백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 국내총생산 (GDP)에 대한 외채비율이 다른 아시아국가들의 절반이하 수준인 16%, 지난해 국제수지흑자폭이 1백40억달러인 점이 강조된다.

외국자본유치가 단기부채보다는 엄청난 규모의 직접투자 (지난해 4백억달러) 와 간접투자 (지난해 2백억달러) 로 이뤄진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 평가절하를 하면 외자유치가 안되며, 환율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높아질 한국상품과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는 품목의 비중이 15~20%밖에 안되고, 다른 동남아국가들보다는 인건비를 더 낮출 수 있기 때문에 환율의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곁들여진다.

물론 중국 같은 정부주도 경제에서는 정책당국의 의지가 중요한데, 객관적 능력까지 인정되기 때문에 '당분간' 중국통화의 평가절하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얼마동안 지속될 것인가 하는 의문은 계속 남는다.

첫째, 현재 75~80%정도가 아시아국가들로부터 들어오는 외국자본유입인데 앞으로도 화교들의 사정이 괜찮을 것인가 (동남아국가들의 자금사정과 평가절하된 환율을 감안해서) . 둘째, 대 (對) 아시아수출이 전체수출금액의 60%나 차지하는데 이들 국가의 환율 평가절하의 영향 (9~15개월의 시차) 이 올 하반기부터 나오게 돼 있다. 중국의 장래 수출경쟁력에 대한 의심이다.

셋째, 중국경제의 기둥이랄 수 있는 국영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부실상태가 심각하다.

이들의 개혁과 재정개혁 등 조치를 취할수록 구조조정자금이 필요하고 실업률이 급상승하게 되는데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수출주도전략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중국정부는 국내투자촉진과 소비진작으로 고용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으나 그들의 산업시설은 이미 상당정도 과잉상태고 그들의 통계에 대한 불신도 큰 편에 속한다.

필요하다면 내륙지방인력을 추가투입하면 되고, 섬유 등 중요 수출품은 쿼터가 확보돼 있어 환율이 무용지물이라는 측면도 강조된다.

어찌됐든 향후 일정기간 중국은 아시아경제 침체의 악순환고리를 차단하는데 한몫을 담당할 준비가 돼 있는 듯이 보여 우리나라에는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사정은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이 고려돼야 하고, 올 하반기께면 선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정책이 등장하고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투기자금의 영향력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더 커질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

우리의 구조조정기회는 정말 덧없이 짧게 지나갈 판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당분간 외환위기.금융위기, 산업조직 붕괴과정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더 큰데도 정책당국의 개혁프로그램 혼선, 공공부문.금융부문.대기업들의 실천노력 부족, 노조 지도자나 사회분야 지도자들의 이해심 부족 속에서 질투심과 한풀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제사 지내기' 를 언제까지 지속할 능력을 우리경제는 갖고 있는가.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가 신사유람단을 중국에 보내야 하는 시절이 도래하는가 궁금할 뿐이다. 정책당국의 결단과 경제주체들의 실천이 아쉽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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