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리서리도 등돌린 '해명'…입각 56일만에 물러나는 주양자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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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론의 계속되는 비판속에 끈질기게 버티던 주양자 (朱良子) 보건복지부장관이 결국 손을 들었다. 朱장관은 27일 오후에도 자신의 재산관련 의혹에 대한 추가해명서를 청와대에 보내는 등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불과 몇시간뒤 朱장관은 김종필 (金鍾泌) 국무총리서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날 통화는 'JP식 경질통보' 였다. 金총리서리는 '사표' 운운하는 직접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사실 여부를 떠나 더이상 문제가 번지는 것은 국정에 도움이 안된다" 는 특유의 우회적 표현으로 사퇴를 종용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라는 말은 朱장관의 재산관계 물의가 사실이 아닐지라도 사퇴가 불가피함을 시사한 대목.

물러나는 朱장관이 숨을 최소한의 공간을 남겨주려는 배려도 깃들여 있다. 이같은 방식은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의 깜짝인사를 비판해온 JP식 인사법이다.

JP는 朱장관의 재산문제로 지난 3월에 이어 또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일찍부터 경질을 고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오효진 (吳효鎭) 공보실장의 발표가 있은 직후 "金총리서리가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았다" 면서도 "총리서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안다" 는 말로 JP와 대통령간에 교감이 이뤄졌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지난 3월 朱장관 재산과 관련된 언론의 보도가 이어질 당시만 해도 JP는 적극적으로 朱장관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朱장관의 해명을 언론에 대신 공표하면서 "문제가 안된다더라" 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朱장관에게도 "요로에 모두 해명하라" 고 당부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YS정부처럼 '단명 (短命) 장관' 을 만들지 않겠다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의지도 작용했다. 또 JP가 총리서리 (署理) 이기에 후임을 제청하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적 여건도 朱장관의 입지를 도왔다.

그러나 이번엔 문제가 훨씬 심각했다. 문제의 남양주땅을 판 돈 70억원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땅을 판 대금으로 받은 6억원의 어음을 신고하지 않은 명백한 하자 (瑕疵) 까지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朱장관의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 朱장관은 지난 3월 "부동산을 사지 않았다" 는 해명과 달리 이번 재산공개에서 오피스텔·상가 등 여섯건의 부동산을 구입한 것이 드러났다. 땅을 판 돈의 사용처도 불명확했고, 일부 예금도 누락된 혐의가 드러났다. 그래서 JP는 24일 해명하겠다며 집무실을 찾아온 朱장관을 만나 해명을 듣지 않고 그냥 서류만 두고가도록 했다. 이후 언론의 잇따른 의혹과 경질주장에 대해서도 JP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朱장관의 해명서를 JP 스스로 납득하기 힘들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특히 식지 않는 비난여론이 6.4 지방선거에서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하리라는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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