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9명 허정훈씨 가족이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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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아~, 예진아~. 왜 대답이 없니?”(아빠)

“저 부르신 거예요? 저 혜진인데요.”(넷째 딸 혜진)

“참, 너 혜진이지. 미안~.”(아빠)

허정훈(52)·이유미(48)씨 부부의 방 세 개짜리 서울 신당동 아파트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대화가 오간다. 아이가 아홉(3남6녀)이나 되다 보니 가끔 헷갈린다. 여섯째 예진이와 넷째 이름이 헷갈렸다. 첫째 효진(23)씨를 시작으로 아이가 하나둘씩 늘어나자 부부는 외우기 쉽게 짓자며 여자애한테는 ‘진’, 남자애에겐 ‘행’ 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다. 그랬더니 아직도 헷갈린다.

허씨 아파트는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렇게 시끌벅적한 집에서 어떻게 살까 싶다. 그런데 정작 아빠 허씨는 “식구 중 한 사람만 집에 없어도 너무 조용해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다”며 “아이들 둘 떠나고 허전해 아내가 하나 더 낳자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둘째 수진(22)씨가 일본으로 시집가고 올 초 셋째 순행(21)씨는 봉사활동 하러 집을 떠났다.

방 세 개를 어떻게 나눠 쓸까. 간단하다. 화장실 딸린 안방은 허씨 부부 몫이고 나머지는 남자와 여자가 한 방씩 쓴다. 맏딸 효진씨 나이가 23세. 다섯 살인 막내 은진이를 비롯해 자매 5명이 한 방을 쓰는 데 대해 불만이 없을까. 허씨는 “안 그래도 전에 한 번 실험을 해 봤는데 바람직하지 않더라”며 “결국 다시 남녀로 나누는 방식으로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서울 목동에 살다가 2003년 무렵 화곡동으로 이사해 방 세 개짜리 작은 빌라 세 채를 얻었다. 첫째부터 넷째까지 독방을 줬다. 그런데 자기 방이 생기니 아이들이 방에만 있으려고 해 결국 1년여 만에 방 세 개짜리 집 한 채로 다시 이사했다는 것이다.

외출할 때는 ‘장난’이 아니다. 움직이기 어려워 웬만하면 같이 안 다닐 것 같은데 허씨네는 다 같이 다니는 걸 좋아한다.

9인승 승합차가 있었는데 애가 늘면서 승용차로 바꿨다. 매년 한두 번 휴가 갈 때는 12인승 승합차를 빌린다. 한번은 부부 모임 장소 근처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다가 모임이 끝나고 차에 태워 오는데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놀이터로 되돌아가 아이를 데려왔다. 그 후론 어딜 가나 아이들 머릿수부터 센다.

허씨는 자녀 교육관이 독특하다. 애들한테 “명문대를 갈 정도로 공부를 잘하면 국가를 대신해 장학금을 준다는 생각으로 학비를 대 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2년제 대학까지만 보내겠다”고 강조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가 많은 만큼 자원을 잘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부모들은 경제력과 무관하게 무조건 자녀에 ‘올인(다걸기)’하는 경우 많은데 자식 교육 투자와 우리 부부의 노후 준비가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와 보건복지가족부는 아이 많이 낳는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 ‘우리 아이 출생을 신고합니다!’ 캠페인을 펼칩니다. 자세한 사항은 service.joins.com/campaign/childbirth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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