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가 한창훈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⑥ 장어(章魚·문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머리는 둥글고 어깨뼈처럼 여덟 개의 긴 다리가 나와 있다. 다리에는 둥근 꽃 같은 게 맞붙어 줄지어 있다. 이것으로 물체에 달라붙는다. 다리 사이 가운데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게 입이다. 이빨은 두 개다. 배와 창자가 거꾸로 머릿속에 있고 눈은 목에 달려 있다. 맛이 달아 회에 좋고 말려 먹어도 좋다. (부분 생략)

문어를 삶을 때 식초와 설탕을 조금씩 넣는다. 육질을 부드럽게 하며 감칠맛이 돌게 한다. 너무 삶으면 질기다.

박씨는 예전 바닷가 현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다. 금오도 사람으로 기운이 좋아 어떤 일을 해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힘의 근원을 묻자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

얼마 전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그들 부부는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3학년 다니는 막내아들 책가방이 대문 밖에 내팽개쳐진 채 공책이며 필통이 다 쏟아져 나와 있는 게 아닌가. 마당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아이가 코피를 흘리며 다 죽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응? 아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이와 비슷한 크기의 무언가가 누워 있었다. 문어였다. 문어는 문어대로 먹물을 줄줄 흘리며 퍼져 있었다. 도망을 치려고 하지만 잔뜩 얻어터졌는지 동작이 시원치 않았다. 그가 달려들어 멱통을 따놓았다.

집이 바다에 바짝 붙어 있어 보름사리 때 물이 들면 거의 길 높이까지 차오른다. 아이 말을 들어보니 이랬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이따만 한 문어가 길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책가방 대뜸 벗어 던지고는 달려들었다. 둘은 뒤엉켰다. 문어는 아이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아이는 이를 악물고 마당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니 서로 조르고 물어뜯고 패대기 치는 전투를 한동안 치렀던 것이다.

“잘했다, 잘했어.”

크기가 크기인지라 부부는 팔 생각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가 기특한 소리를 했다.

“아부지하고 어무니하고 잡수라고 내가 목숨 걸고 잡았으니께 팔지 말고 잡수시오.”

그러니 어떻게 팔겠는가. 워낙 커서 하루에 다리 하나씩, 몸통은 마지막 날, 이렇게 9일간 훌륭한 몸보신을 했으며 자기의 기운은 거기에서 나온단다. 문어가 대표적인 보양식이긴 하지만 그런 마음을 얻는다면 어떤 힘인들 안 나올까.

옛날이야기에 문어가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이 왕왕 나오곤 하는데 생김새 때문에 나온 상상이다. 문어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아이와 싸웠던 문어는 자신을 죽어도 놔주지 않기 때문에 움직임이 쉬운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문어는 주로 문어 통발배가 잡는다. 예전에는 붉은 사기로 만든 문어단지로 잡았다. 이 녀석들은 유별난 버릇이 있는데 ‘집’의 개념이 아주 강해 옴팍한 것만 있으면 들어앉는다. 그리고 붉은색을 유난히 좋아한다. 공안검사가 봤다면 먹지 않고 모두 구속시켰을 것이다.

낚시에 간혹 올라올 때도 있다. 물고기 같은 움직임 없이 묵직하게 끌고 들어가기만 한다면 문어일 가능성이 크다. 문어가 물었다 싶으면 빨리 올려야 한다. 바위에 붙으면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한다. 채비가 터진다.

올라왔다 하더라도 초보자들은 제가 더 놀라 허둥대다가 놓치기 쉽다. 나도 예전에 저수지에서 붕어 낚시를 하다가 커다란 자라가 올라와서 허둥댄 적이 있다. 자라목이 그렇게 길게 늘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녀석은 도망쳤고 나는 방생했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다시 문어. 놓치기 싫다면 배짱 좋게 목 부분을 움켜쥐면 된다(『자산어보』 설명대로라면 머리 부분이다. 그러나 둥그런 위쪽이 배다. 그래도 편의상 ‘목’이라고 적는다). 팔목을 감고 빨판으로 빨아들이는 느낌은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잡으면 온 식구가 행복하다.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곧잘 도망을 치는 녀석이라 보관을 단단히 해야 한다. 가랑이 사이의 이빨은 특히 조심.

삶을 때 식초와 설탕을 조금씩 넣는다. 육질을 부드럽게 하며 감칠맛이 돌게 한다. 너무 삶으면 질기다. 낙지도 마찬가지지만 머리와 다리가 익는 시간이 다르다. 다리가 다 익었으면 잘라내고 머리 부분만 더 삶는다. 봄철에 알이 차 있으면 알 맛이 기가 막히다. 머리를 가르면 먹물이 들어 있다. 이게 소스 역할을 한다. 찍어먹으면 좋다. 다리는 어슷어슷 잘라 무쳐놓으면 좋은 반찬이 된다. 죽을 쑤려면 북어처럼 방망이로 두들긴다.

봄철에 전남 고흥군 도양항에 가면 문어 낚는 거룻배가 많다. 도양항은 녹동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바로 앞에 소록도가 있다. 그곳 어부는 붉은 색 천을 달고 돼지 비계를 붙여 낚는다. 자그마한 거룻배가 여기저기 떠 있는 풍경이 볼 만하다. 요즘도 할 것이다. 조업금지 구역에 들어가 간혹 해양경찰에 쫓겨 다니긴 하지만.

소설가 한창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