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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대중매체의 선정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할리우드의 노랑나비' 이승희가 최근 국내에서 영화촬영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물 위의 여자' 라는 에로영화였다.가판대 연예전문지가 '역시 이승희' 라는 제목과 함께 그녀의 전라사진을 실은 것이 이번 그녀의 체류를 알려준 거의 전부였다.

지난해 봄 내한땐 본인도 영문을 몰라 눈이 휘둥그래진 채 전언론의 조명을 받은 그녀였다.게다가 인세다, 출연료다, 뭐다 해서 억만금을 (달러로! 바꿔)가져간 그녀가 이번 언론의 철저한 외면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상실감? 아니면 "한국언론이란 도대체 뭔가" 라는 의구심? 아마 둘 다가 교차했을 것이다.우리 언론 (종합일간지)에 잠복한 '황색병' 은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평소엔 그 증세가 경미하다.

그러나 이것이 한번 도지면 집단발작에 가까운 아노미에 빠져버린다.이승희 경우가 그랬다.어느 보도는 지난해 그녀를 '21세기형 전문직 여성' 의 대표쯤으로 치켜세웠다.

착각과 과장과 왜곡이었다.자성과 더불어, 우리 대중매체는 대중을 너무 만만히 보지 않나 생각이 든다.어떤 사람, 어떤 사건에도 황색적 부분은 들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도덕군자만의 사회가 아닌 한 대중매체에서 '황색 기사 혹은 프로그램' 의 가치는 일정하게 인정된다.그러나 대중은 일상의 양념으로 적당량의 '황색거리' 를 제공받아 적당량의 시간을 즐길 뿐 그들이 정말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황색이 아닌 본질의 몸체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중매체는 매체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그 '황색거리' 로 대중을 지배하려는 시도를 되풀이하고 있다.그런 시도는 대중에 대한 영합 정도가 아니라, 대중에 대한 아부가 돼 결과적으로 대중의 눈과 귀를 가로막는 역기능을 열심히 수행하게 만든다.

본질의 몸체에 대한 순기능적 호기심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이승희를 다룬 대중매체들이 그녀가 대중과 나눠야 할, 인간으로서 겪은 내밀한 고통은 무화 (無化) 시키고 오로지 그녀를, 누드를 상품화한 자본주의의 스타라고 치켜세우는 몰가치적 상업주의만 드러낸 것이 예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비근한 예로 요즘 상영중인 영화 '투캅스3' 와 외화 '지아이 제인' 을 비교해 보자. '지아이 제인' 이 그리 뛰어난 영화가 아니지만 편의상 예로 든다.두 영화는 모두 남성전문사회에 뛰어든 여성들 ( '지아이 제인' 은 해군특수부대 SEAL 훈련을 받는 여성장교, '투캅스3' 는 형사가 된 처녀) 의 도전과 활약을 그리고 있다.각각 드라마와 코미디라는 장르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남성우위체제를 거부하려는 성대결의 의미를 갖고있다.

그런데 '지아이 제인' 의 데미 무어는 성 (性) 을 떠나 자신이 오로지 훈련대원일 뿐이라는 뜻에서 스스로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지만, '투캅스3' 의 권민중은 오로지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화면을 누빈다.적어도 외형상으로 한 감독은 여성을 제거했고, 또 한 감독은 여성을 더 강조한 셈이다.

후자의 경우 대중 특히 남성에 아부하는 눈요기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때문에 '투캅스3' 는 영화의 주제가 될 법한 한국사회에서의 성차별 문제 등을 대중의 담론의 장 (場) 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TV에 횡행하는 트렌디 드라마나 깡패 소재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10대의 연애이야기나 깡패를 등장시키는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별도로 치더라도 이같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선정적.선동적인 '대중아부형' 이어서 드라마 전체를 허황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요컨대 일상의 본질적 요소를 끌어모아 허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일상에 들어 있는 삶의 보편적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탈적.파편적 요소를 조립해 이것이 일상 전체를 나타내는 듯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대중을 만만히 보는 대중매체나 대중문화 생산자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 한 우리의 대중문화가 국제경쟁력을 갖겠다는 것은 한낱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이헌익<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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