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대투 매각 마무리되면] 구조조정 막바지…지각변동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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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국내 증시 불안의 최대 진원지로 지목돼온 한국투자증권(한투)과 대한투자증권(대투) 매각작업이 한고비를 넘었다. 한투와 대투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동원금융지주와 영국계 PCA컨소시엄는 실사를 거쳐 9월초 본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들 양사가 한투와 대투를 인수해 거대 증권사로 부상하게 되면 자산운용시장은 지각 변동이 불가피해진다.

◇투신사 구조조정 마무리=동원과 PCA가 한투와 대투의 인수협상자로 확정된 것은 1989년 이후 증시 불안의 최대 진앙지였던 투신권 정비의 마무리를 의미한다.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할 두 증권사(당시에는 투신사)는 증시 안정은 커녕 증시가 불안할 때는 주식을 더욱 내다팔며 증시 수급을 왜곡시킬 때가 더 많았다.

1989년 이른바 12.12 증시 안정화 조치를 통해 두 증권사에 2조원의 한국은행 특융자금을 투입했으나 모두 부실자산으로 전락했다. 외환위기 이후 7조7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정상화에 실패했다. 따라서 이들 양대 투신이 국내외의 민간 금융회사에 넘어가는 것은 12.12조치 이후 15년 가까이 끌어온 정부 주도 투신업계 구조조정의 완결판이 될 전망이다.

◇가격협상이 매각의 관건=이처럼 그동안 구조조정 비용이 막대했던 만큼 매각 협상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정부는 올 2월 미국계 푸르덴셜그룹으로 넘긴 현투증권(현 푸르덴셜증권)보다 많은 금액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현투증권이 3555억원에 넘어갔으므로 한투와 대투는 회사 브랜드와 수탁고를 감안하면 5000억원은 될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따라서 정부는 과거 제일은행을 매각할 때처럼 포괄적인 손실보장 등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아직 손실이 실현되지 않아 부실화 가능성이 있는 CBO(채권담보부증권) 후순위채에 대해서는 손실보장을 고려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 어차피 가격차이가 크지 않으므로 언제든지 예비협상대상자와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PCA와 동원 관계자는 "이미 투입된 공적자금보다는 이들 증권사가 앞으로 얼마나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판도 바뀐다=증권업계와 자산운용업계의 판도가 크게 달라지게 됐다. 한투와 대투는 각각 72개 점포망을 갖춰 막강한 영업력을 자랑하고 있다. 또 전환 증권사라는 특성 때문에 수익증권 판매와 상품 개발 능력에서는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매매수수료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기존 증권사들이 최근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감안할 때 펀드 판매가 많은 이 두 증권사를 가져갈 경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동원지주가 한투증권을 인수할 경우 점포수 127개로 업계에서 점포가 가장 많은 현대증권(132개)과 비슷해진다. 특히 수익증권 판매수수료면에서는 동원증권(75억원)과 한투증권(1210억원)을 합하면 대투증권과 함께 업계에서 압도적인 1,2위를 차지하게 된다.

PCA가 대투증권을 인수하게 되면 현투증권을 인수한 푸르덴셜과 함께 국내 증권시장에서 외국계 운용사의 영향력이 막강해 진다. PCA는 2002년2월 영풍생명을 인수해 PCA생명을 출범시키며 한국에 첫 진출한데 이어 같은해 10월 굿모닝투자신탁운용을 사들여 PCA투신운용을 설립했다. 현재 수탁고 기준으로 업계 20위권인 PCA투신운용이 대투증권을 인수하면 수탁고가 20조원을 웃도는 자산운용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결국 특징없는 국내 증권사나 자산 운용사는 이합집산 과정을 거쳐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김동호.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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