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기업부채 조정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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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일본경제의 움직임은 짙은 먹구름이 다시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는 듯한 불길한 조짐을 느끼게 한다.일본정부의 경제위기 해결능력에 대한 국내외의 불신 증가는 앞으로 엔화 환율과 일본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의 관심이 클린턴의 스캔들로부터 다시 아시아 금융위기로 옮겨지게 되고, 일본환율의 절하는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압력을 가중시켜 아시아 금융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일본의 경우 지난 약 7~8년간의 경기침체와 거품붕괴로 인한 국내금융불안의 심화가 외환위기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2천2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와 약 8천억달러에 달하는 순대외채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경제문제 해결능력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가고 또한 일본 금융 부실이 깊어져 감에 따라 이제 엔화가 국제금융.투기자금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문제는 이러한 일본경제의 어려움을 우리가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일본환율과 중국환율의 움직임은 외환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우리 기업의 재무구조를 볼때 앞으로 해외로부터 순차입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외환위기의 재연을 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최소한 연간 2백억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흑자를 계속 내지 않으면 원활한 채무이행이 어렵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아래서 엔화와 위안화의 절하는 우리의 채무이행능력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고 외환시장의 불안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그동안 우리 정부나 국민은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다고 안심하고 있는 듯하나 더 큰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발빠른 구조개혁으로 위기관리를 해나가야 한다.최근 들어 외환위기가 다소 수그러 들었던 이면에는 민간 금융기관 부채의 공공부채화라는 과정이 있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지원자금 등으로 민간 금융기관의 단기부채를 갚게 도와줬고 또한 정부보증을 통해 외채협상을 이끌어냈다.그러나 지난 3~4개월동안의 우리 환율과 금리의 움직임은 기업의 재무구조를 크게 악화시켜 놓았고 국내 경기의 위축은 자금사정을 더욱 악화시켜 많은 대기업들이 이미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다.

단지 협조융자 등을 통해 그동안 이들의 부도를 눌러왔을 뿐이다.만약 재무상황이 크게 악화된 이들이 대외지급불능 상황에 이르렀을 경우 정부는 기업부채에 대한 지급보증을 해 채무상환연장을 시도하든지 아니면 대기업 채무불이행을 방치하든지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어느 경우든 극심한 외환위기와 궁극적인 국가부도 사태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금융부실구조와 기업재무구조를 가지고는 우리가 국제금융시장의 강풍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부실정리와 기업재무구조조정을 서둘러 착수해야 한다.그리고 재무구조와 현금유동성이 극히 악화된 대재벌들은 스스로 빠른 시일내에 국내외 채권자 회의를 소집하고 자신들의 재무상황을 솔직히 털어놓고 채권자들과 채무상환 재조정을 위한 협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결국은 기업부채의 상당부분이 출자로 전환되지 않고는 우리 기업들이 이 파고를 헤쳐나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막다른 순간까지 가게 되면 정부가 나서서 구해주겠지 하고 재벌들이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자신과 국가경제가 공멸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정부도 금융부실정리와 함께 기업의 재무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국내외 채권자들의 출자전환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빨리 마련하고 이를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업재무구조조정은 시장기능에 의한 채권자와 채무자간 합의에 의해 이뤄지도록 유도돼야 한다.지금 이러한 조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심각한 외환위기를 넘겼다고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조윤제<서강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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