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대회에서 요조숙녀냐 요부냐는 왜 따지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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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아무도 2등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지만 올해 미스 USA는 우승자보다 차점자가 더 유명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최근 미스 USA 조직위원회는 차점자 캐리 프리진(사진)의 세미 누드 촬영 전력을 두고 왕관을 박탈하네 마네 갑론을박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격을 유지하기로 결론 내렸지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해프닝이다.
그녀의 유명세는 때아닌 동성애 결혼에 대한 논란에서 시작됐다. 대회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프리진에게 동성애 결혼에 대한 견해를 물었고, 그녀는 평소 생각대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문제는 해당 심사위원이 동성애자였다는 것.

프리진이 2위에 오르자 일각에서는 그녀의 소신 발언 때문에 1위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졸지에 그녀는 미국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의식 있는 젊은이’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여기에 최근에는 지난해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까지 가세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그녀를 두둔하고 나섰다.

프리진의 지명도가 높아지자 그녀가 졸업한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6월 1일을 ‘캐리 프리진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진보적 성향이 강한 곳이라 반발은 더욱 거셌다.

이 난리 속에 그녀에게 가슴 성형수술 비용을 대 줬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나, 곧이어 그녀가 10대 시절 찍었다는 세미 누드 사진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미녀로서 이른바 ‘품위’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누드의 강도가 심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왕관을 박탈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선 동성애 결혼은 오바마 대통령도 대선 당시 답변하기 곤란해했던 민감한 문제다.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출전자들에게 묻는 이유가 뭘까. 미인대회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난에 부닥치자 주최 측은 언젠가부터 내면의 아름다움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듯 출전자들에게 시사적인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미인대회는 근본적으로 여성의 외모를 상품화한다. 그런 시사적인 질문 몇 가지 던진다고 미인대회가 돌연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회로 탈바꿈할 리 없다. 또 누드가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라면 도대체 비키니 수영복 심사는 왜 하는 걸까. 애초에 미인대회는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보수 진영의 아이콘이 돼 버린 이 아가씨의 과거 전력이 어찌나 진보적(?)인지 보는 사람도 뭐가 뭔지 어리둥절하다. 이는 사실 미인대회 자체가 갖는 자기모순의 결과다. 미인대회에 출전하려면 모르는 이들 앞에서 벗은 몸을 드러낼 정도로 맹랑해야 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걱정할 만큼 참하고 수줍어야 한다. 결국 미인대회는 요조숙녀와 요부의 이중성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남성 중심적 관점을 재생산한다.

자기 몸이 하도 예뻐 드러내고 싶다는데 말릴 재간은 없다. 그러나 미인대회가 여성을 외모로 판단하는 차별적 시선을 조장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가슴 성형까지 해 가면서 이 대회에 출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라면, 차라리 퀴즈쇼를 해라.

김수경 misquick@joongang.co.kr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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