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건축가는 독재자가 아니라 늘 타협하는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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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14면

“뉴욕의 상징적인 두 건축물, 록펠러 센터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들어선 것은 대공황기였습니다. 경제위기에 직면해 다른 많은 분야가 비관적이 될 수 있어도 건축은 다릅니다. 삶의 일부이자 미래에 관한 분야이기 때문이죠. 경기가 안 좋은 요즘, 건축의 규모를 줄이기도 합니다. 그보다는 물질에 치우쳤던 건축의 의미를 정신적 차원에서 다시 생각할 때죠.”

용산 재개발 마스터플랜 맡은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

다니엘 리베스킨트(63·사진)는 기자회견 첫머리부터 특유의 낙관을 드러냈다. 27일 SBS가 주최한 2009서울디지털포럼에 연사로 참석한 참이었다. 이어진 강연에서도 그는 낙관주의·정치·기억·의외·개방·도전·혁신·지속·민주주의 등 9개의 키워드로 자신의 건축을 설명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뉴욕 그라운드 제로 마스터플랜 등을 통해 명성을 쌓아 온 이 세계적 건축가를 중앙SUNDAY가 따로 만났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뉴욕 ‘그라운드 제로’도 작업
사실 그의 낙관주의는 좀 역설적인 면이 있다. 참혹한 비극이 그의 건축에 곧잘 모티프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제로, 즉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의 재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공모전에 최종 당선된 그의 마스터플랜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자유의 여신상·독립선언서가 상징하는 가치를 강조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도 그랬다. 건축물 자체가 관람객에게 유대인이 겪은 고통을 되새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줬지만, 건축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89년 설계공모전에 그가 당선된 직후부터 사업 재검토 등 난항이 벌어졌다. 10년 만인 99년에야 완공됐다. 그동안 그는 세 자녀, 아내와 함께 아예 베를린에 살면서 다양한 공방에 대응했다.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큰 관심 속에 그의 마스터플랜이 당선된 직후에도 사업 주체들 간에 첨예한 대립이 벌어졌다. 리베스킨트는 이를 2005년 펴낸 저서 『낙천주의 예술가(Breaking Ground) 』에 적나라하게 소개해 놓았다. 상대방에 대한 실명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행 중인 WTC 프로젝트는 작지 않은 난관에 처해 있다. 경제위기로 일부 건물의 규모가 축소되리라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리베스킨트는 이런 불길한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규모의 축소가 아니라 일부 공사가 지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전수전 두루 겪은 그의 낙관주의는 비결이 뭘까. “민주주의에서 건축가는 프리마돈나가 아니다”고 답변을 시작했다. “대규모 프로젝트에는 갈등이 수반되는 게 당연합니다. 뉴욕·베를린·서울 다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니까요. 그걸 해결하고 합의에 도달해야 최선의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내비친 리베스킨트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 뉴욕에 정착한 이민자다. 유대인인 그의 부모는 나치의 박해를 경험한 세대다. “저는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포기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물론 힘들어요. (마스터플랜에 당선된 뒤) 뉴욕에서 하루도 편하게 넘어간 날이 없어요. 하지만 그 모든 논란의 과정이 더 나은 프로젝트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 낙관주의의 비결이라면 아내가 있죠. 대화할 상대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캐나다 출신인 아내 니나 리베스킨트는 그의 실질적인 조력자로, 이번 방한에도 동반했다.

“갈등은 최선의 프로젝트 만드는 길”
최근 리베스킨트는 용산 역세권을 재개발하는 국제업무지구계획, 일명 ‘용산 드림허브’의 마스터플랜에도 당선됐다. 56만㎡의 부지에 2016년까지 25조원을 들여 주거·업무·문화시설 등을 짓는 초대형 개발사업이다. 마스터플랜에는 15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을 중심으로 건물군과 습지·녹지를 배치하고 한강변을 도보로 연결하는 구상이 담겨 있다. 리베스킨트는 신라금관, 한반도 고지도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몇몇 이미지만으로 자신의 건축을 해석하려는 시각은 경계했다.

“제 작업이 외부에서 어떤 상징을 가져다가 적용하는 식은 아닙니다. 프로젝트의 내적인 차원에서 발전해 나오는 것이지요. 용산 드림허브는 복합적 용도를 겨냥한 기본구상과 한강의 중심부를 끼고 있는 부지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21세기 도시건축의 새롭고 고매한 이상을 담아내는 데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대도시 서울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도시건축의 미래라는 점에서) 전 세계와 관련된 일이라고 봤어요.” 그는 특히 한강과의 연계를 두고 “도시가 강을 향해 등을 돌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강이 도시의 중심이 될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계적 건축가들이 한국에서 하는 작업이 호평만 받는 건 아니다. 리베스킨트가 2003년 외벽 디자인을 맡은 서울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건물도 그랬다. 과감한 구조물에 평가가 엇갈렸다. 외국 건축가들이 한국의 지형·역사를 잘 모르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는다는 비판도 있다. 이를 들려주자 리베스킨트는 “때로는 평생 살아온 사람보다 낯선 이방인이 더 많은 걸 알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은 서울 사람, 뉴욕은 뉴요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지역이든 전 세계에서 뛰어난 재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죠.”

용산에 대한 질문을 거듭 던지자 그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 같은 단계”라는 말로 답변을 아꼈다. “건축주와 함께 일해야 하고, 관련 기관이나 대중과도 대화를 나눠야죠. 그게 프로젝트가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또 건축은 예술인 동시에 과학이니 기술적 데이터도 결합해야죠. 이미 몇 가지 새로운 요구를 받았고, 마스터플랜에 변화한 내용도 있습니다.”

“강력한 구상 있어야 타협 견뎌”
그는 “건축가는 독재자가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위대한 건축가는 늘 타협해 왔습니다. 미켈란젤로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린 교황이 없었다면 그의 위대한 건축은 하나도 지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미켈란젤로는 그 안에서 싸우고 창조하면서 놀랄 만한 건축적 업적을 이뤄 냈습니다. 제 건축도 다른 모든 건물처럼 타협의 산물입니다. 물론 건축가는 강력한 구상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타협을 견뎌 낼 수 있죠. 건축가의 구상이 연약하면 타협 끝에 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용산 마스터플랜에 대해 “어떤 다른 도시가 아니라 서울의 과거·현재·미래와 유기적 연관을 갖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은 사람의 얼굴로 치면 아주 강한 개성이 있습니다. 중층적이고 복합적이에요. (마스터플랜은) 그걸 탐구하고 표현한 것이죠. 서울은 독특해요. 틀에서 찍어 낸 듯 엇비슷한 건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도시의 개성은 그 입지, 사는 사람, 삶의 속도나 밤의 모습에서 나오죠.”

서울에서 인상적인 건물을 묻자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 대신 “알다시피 서울은 건축가들에게 흥미로운 도시”라고 말했다. “기념엽서에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이 도시를 활용하는 방법이 그렇죠. 아침부터 밤까지, 서울은 역동적인 발전기 같아요. 그게 제가 서울을 위대한 도시 중 하나로 꼽는 이유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뉴욕과도 닮았어요. 전 세계 수많은 도시에 다녀 봤는데 더 오래 있고 싶고, 방문이 기대되는 도시가 있어요. 제게는 베를린이 그렇고, 서울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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