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항쟁 다룬 시집 두권 함께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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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올해도 어김없이 유채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잔설을 머금은 한라산은 넉넉한 두 팔로 넘실대는 바다와 바람 부는 돌섬을 끌어안는다.눈이 시리게 노란 꽃밭에는 신혼 부부들의 수줍은 약속이 피어나고…. 제주도가 안겨주는 봄의 일상이다.

하지만 이 그윽한 풍경의 한꺼풀 뒤에는 험난한 역사가 안겨준 생채기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있다.50년 전 48년 4월3일부터 시작된 그 폭풍을 어떤 이는 항쟁이라고도 하고 다른 편에서는 폭동이라고도 부른다.용어선택만큼이나 상반된 해석은 이후 제주도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4.3에 대한 마르지 않는 눈물을 보듬는 두 권의 시집이 4월에 맞춰 나란히 나왔다.제주작가회의에서 펴낸 '바람처럼 까마귀처럼' (실천문학사刊) 과 제주출신 시조시인 홍성운씨가 펴낸 '숨은 꽃을 찾아서' (푸른숲刊)에는 그 설움의 기억들이 들풀 향기처럼 짙게 배어나온다.

'바람처럼 까마귀처럼' 은 괴로운 수난의 시대를 결코 기억 저편으로 넘길 수 없는 제주시인들의 통곡이 흐른다.목놓아 부른 '잠들지 않는 남도에 대한 진혼곡' 이다.

문충성.현안식.고정렬을 비롯한 제주 토박이 시인 16명이 쓴 시 60여 수는 방언 고유의 말맛을 살리면서 '사는 게 차리리 원수 같았던 시절' 의 참혹한 역사적 진실을 복원해내고 있다.

'숨은 꽃을 찾아서' 는 시조로 등단한 홍성운씨의 첫 시집이다.시조의 율조를 실험적으로 적용하면서 제주사람들만이 갖는 오롯한 정서를 절제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한 포기 꽃마저도 4.3의 한과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 화산섬의 삶 속에서 그가 외치는 '동면도 오늘 같으면/깨고 싶다, 바람아' 라는 싯귀가 귓속을 맴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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