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아세안 정상회의, 문화외교 기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다음 달 1일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는 한국과 아세안의 정치·경제 관계를 한 단계 상승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아세안 국가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호관계를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돼 이를 위한 정치·경제·외교 측면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21세기 국제무대에서 문화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은 이른바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문화원,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 프랑스의 알리앙세 프랑세즈, 독일의 괴테하우스 등은 자국의 소프트 파워를 진작시키기 위한 장기적 전략에 따라 그 지위와 역할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도 기존의 문화원 개념을 넘어 동남아시아 전역에 일본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Japan Creative Center(JCC)’를 싱가포르에 개원하는 등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외교지향의 변화는 지정학적 여건이나 국제정치적 상황에서 강소국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에선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동남아시아에 맹위를 떨친 한류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역동성, 오랜 역사와 전통이 한류를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자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류의 득세가 한국 문화의 일방적 유입에 대한 우려와 경계심을 낳았고, 이것이 최근 한류의 정체를 낳은 한 요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을 감안해 동남아 지역에서 우리의 문화외교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앞으로의 문화교류는 동남아 국가들이 자국의 문화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이번 제주도 특별 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최되는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 공연이 좋은 사례다. 또 쌍방향의 문화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서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가칭 ‘한국문화예술센터’가 방콕이나 자카르타, 또는 싱가포르 등 거점국가에 전략적으로 설립될 필요가 있다. 이 센터는 한국 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닌 동남아 국가 문화의 한국 전파에도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체육 각 분야의 개방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동남아 각 국의 인재들이 한국의 각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박지성 선수로 인해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아가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친근감을 갖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셋째, 외국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킬러콘텐트를 지속적으로 길러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한 환경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쟁이다. 각종 문화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례로 최근 논의되고 있는 미디어 관련 법 개정은 보다 많은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할 것이다.

김중근 주싱가포르 대사

[내 생각은…] 은 독자들에게 개방된 '열린 광장'입니다. 형식·주제·내용의 제한 없이 개방된 토론의 난장을 지향합니다.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환영합니다. e-메일 opinionpage@joongang.co.kr / 팩스 02-751-5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