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원,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 프랑스의 알리앙세 프랑세즈, 독일의 괴테하우스 등은 자국의 소프트 파워를 진작시키기 위한 장기적 전략에 따라 그 지위와 역할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도 기존의 문화원 개념을 넘어 동남아시아 전역에 일본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Japan Creative Center(JCC)’를 싱가포르에 개원하는 등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외교지향의 변화는 지정학적 여건이나 국제정치적 상황에서 강소국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에선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동남아시아에 맹위를 떨친 한류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역동성, 오랜 역사와 전통이 한류를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자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류의 득세가 한국 문화의 일방적 유입에 대한 우려와 경계심을 낳았고, 이것이 최근 한류의 정체를 낳은 한 요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을 감안해 동남아 지역에서 우리의 문화외교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앞으로의 문화교류는 동남아 국가들이 자국의 문화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이번 제주도 특별 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최되는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 공연이 좋은 사례다. 또 쌍방향의 문화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서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가칭 ‘한국문화예술센터’가 방콕이나 자카르타, 또는 싱가포르 등 거점국가에 전략적으로 설립될 필요가 있다. 이 센터는 한국 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닌 동남아 국가 문화의 한국 전파에도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체육 각 분야의 개방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동남아 각 국의 인재들이 한국의 각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박지성 선수로 인해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아가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친근감을 갖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셋째, 외국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킬러콘텐트를 지속적으로 길러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한 환경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쟁이다. 각종 문화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례로 최근 논의되고 있는 미디어 관련 법 개정은 보다 많은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할 것이다.
김중근 주싱가포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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