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왜 다시 오르나]금융시장 '엔화폭락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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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엔화 폭락이라는 해외 돌발 악재가 한동안 잔잔하던 국내 금융시장에 짙은 파장을 던지며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허물어뜨리고 있다.금융당국은 환율이 이달 초순까지 1천3백원대에 머무르기만 하면 국제통화기금 (IMF) 과 본격적 금리인하 협상을 벌이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일본의 엔저 위기로 환율이 느닷없이 급등하면서 당분간 추진이 어렵게 됐다.

개방경제 아래에서 한나라의 금융안정을 자체 노력만 갖고 달성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실감케 하는 계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환율이 1백35엔까지 치솟아 6년래 최고치에 오르고 주식.채권값이 급락하는 등 일본 열도가 지난주말 '트리플 약세' 국면에 빠져 들자 그 충격은 곧바로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열흘 가까이 달러당 1천3백원대에 안착했던 서울 외환시장의 원화 환율은 지난 3일 1천4백원대로 올라선 뒤 사흘째 반등하고 있다.6일엔 장중 한때 달러당 1천4백90원까지 치솟아 1천5백원대의 턱밑까지 갔다.

주가도 단기낙폭 과다에 빠른 반발로 지난 주말 반짝 반등하더니 주초반 역시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국내 금융시장의 주변 여건만 본다면 환율안정이 지속돼 금리인하 여건이 무르익고 있었다.

원자재 수입부진이 큰 몫을 하긴 했지만 월30억달러 이상의 흑자기조가 석달째 이어졌고, 기업들의 외화비축이 급증해 국내 거주자 외화예금 잔고가 지난달말 현재 70억달러를 넘어섰다.이에 따라 지난달말 현재 가용 외환보유고도 2백41억달러를 기록, 환란 (換亂) 직전인 지난해 10월말 수준에 육박했다.

이처럼 시중에 달러가 비교적 풍부해졌는데도 환율이 오른 것은 한마디로 일본 금융시스템 붕괴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재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감이 작용한 때문이다.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인 투자가들이 아시아에 대한 투자비중을 줄이면서 주식 및 채권매각을 서둘러 달러 환전수요를 부추기고 있고, 한국 대외 금융기관 채무의 24%를 차지하는 일본 금융기관들이 상환연장을 기피할지 모른다는 우려감도 국내 금융불안 심리를 가중시키고 있다" 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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