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일본경제 붕괴하는가]한발 늦은 대응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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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불황에 '정책불황' 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정부 당국의 안이한 경기판단과 정책 실기 (失機)가 경제혼란의 원인이 됐다는 함축적인 의미다.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는 지난달 국회 답변에서 "솔직히 이런 상황이 올 줄 몰랐다" 고 고백했다.

그는 국내총생산 (GDP) 의 4.7%까지 오른 재정적자를 2003년까지 3% 이내로 줄이기 위해 소비세율을 인상하고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강력한 재정구조 개혁법을 밀어붙였다.

8년간의 불황으로 경제체력이 소진된 점과 아시아 금융위기 가능성을 살피지 못한 대장성.통산성 관료들의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지난해 3월부터 미국이 '내수확대' 를 요구했지만, 일본이 정책전환을 시작한 것은 불황이 심화된 지난해 12월부터다.

"소득세 감세 및 소비세율 인하" 라는 미국의 요구를 "세법을 건드리는 내정간섭" 이라고 반발한 것도 일본 정치인들이 스스로 운신폭을 좁힌 악수 (惡手) 였다.

외국의 압력과 정치에 발목이 잡혀 뒤늦게 내놓은 처방은 약효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다이와 (大和) 종합연구소 측은 "10조엔 이상의 경기대책이 석달만 빨리 나왔어도 시장흐름을 충분히 반전시킬 수 있었다" 고 아쉬워했다.

일본은 지난 92년 이후 7차례의 경기부양책에 84조2천억엔을 쏟아부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이번 부양책도 당해연도만 적용되는 단기 처방이다.

니혼게이자이 (日本經濟) 신문이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대에서 0.7%로 올라가겠지만 내년도 성장률은 당초 전망인 1.2%에서 0.9%로 하향 조정될 것" 이라고 경고한 것도 땜질처방의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대장성과 일본은행 등이 접대 스캔들로 국내외 신뢰를 상실한 점도 작용했다.

경제정책에 대한 전략을 차분히 세울 수 있는 세력이 실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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