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폭락]국제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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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동남아 사태에 이어 일본경제마저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달러에 대한 엔화가치가 6년7개월만의 최저치로 폭락하는 가운데 세계경제 전체를 뒤흔들 위협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엔화 폭락이 이어질 경우 중국 위안 (元) 화의 평가절하를 초래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가까스로 안정을 되찾고 있는 한국경제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기대해온 일본으로부터의 신규차입이 불가능해지고 고환율.고금리의 악순환 현상 심화가 우려된다.이처럼 상대국 통화의 평가절하가 계속될 경우 한국의 수출증대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세계경제의 기관차격인 미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일본이 달러 확보를 위해 미국채권을 처분하면 금리가 치솟아 미국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엔화 폭락이라는 '강진 (强震)' 에 비하면 아시아통화위기는 '미진 (微震)' 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엔화 폭락이 미치는 국내외 파장을 살펴본다.

[뉴욕.도쿄 = 김동균.이철호 특파원]주가.엔화가치.채권값의 주말 동반폭락으로 일본이 충격에 휩싸였다.그러나 같은 3일 미국의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9천달러대에 진입, 일본과는 반대현상을 보였다.

미.일의 경제전문가들은 일본경제의 붕괴와 미국경제의 거품 가능성을 동시에 지적하며 이런 흐름이 세계경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JP 모건은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세계자본이 미국에 집중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초래됐다.

현재 미국 달러화와 주가는 실물경제에 대비해 20% 이상 과대 평가돼 있다" 고 거품 붕괴 가능성을 우려했다.엔화 하락이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명분을 제공, 아시아경제 전체가 파국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에 참석중인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는 3일 "필요한 경제대책을 강구하겠다" 고 밝혔으나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일본이 보다 대담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고 압박을 가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특히 일본 관료층을 지목, "경기부양을 위해 관료주의부터 버리라" 고 요구했다.

일본 대장성은 무디스의 일본 신용등급 하향조정 직후 "민간회사의 평가일 뿐 일본의 국제신용은 흔들리지 않을 것" 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런던금융시장에서 재팬 프리미엄 (일본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가산금리) 은 하루만에 0.1%포인트 뛰어올라 0.28%를 기록했다.도쿄 (東京) 금융시장은 "국가신용 최상등급인 Aaa를 받는 국가는 미.일.독.영.프랑스 등 5개국" 이라며 "장기전망이 '부정적' 으로 바뀐 것은 일본이 경제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일본총합연구소의 다카하시 스스무 (高橋進) 조사부장은 "구조변혁을 수반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부에서는 "재정구조 개혁법 등 정책의 기본 골간을 바꿀 수는 없다" 고 반발, 정책전환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내홍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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