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Knowledge <38> 국내 예술영화관 가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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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이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그 제목을 비틀어 이렇게 물어볼까요? “예술영화를 좋아하시나요?” 때마침 전 세계 영화인의 축제 ‘칸 영화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직후입니다. 칸 영화제는 보통 때의 상업적 고려만으로는 극장에서 상영 기회를 보장받기 어려운 전 세계 예술영화의 축제라고 바꿔 부를 수 있지요. 예술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국내에서 예술영화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양성희 기자

예술영화-감독 이름 하나 믿고 본다

예술영화가 뭔지는 알고 계시죠? 막연하지만 ‘돈’보다 ‘예술’한 영화? 맞습니다. 예술영화뿐 아니라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다양성영화, 비상업영화, 작가영화 등 비슷한 개념과 용어도 많습니다. 이런 모든 영화는 한마디로 이윤 추구를 최대 목적으로 내건 상업 대중영화에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할리우드에는 ‘하이 컨셉트(high concept)’라는 흥행 공식이 있습니다. 투자자들을 설득해 제작비를 끌어올 때 20자 내외로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를 ‘하이 컨셉트’ 영화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장르와 줄거리가 분명해 ‘셀링 포인트’가 확실한 영화지요.

최근 극장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코미디 ‘7급 공무원’을 예로 들어볼까요? 국가정보 비밀요원 남녀가 서로의 신분을 속인 채 연인이 된 뒤 벌어지는 엎치락뒤치락 코믹 해프닝.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 딱 감이 오시죠? 반면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어떤 영화라고 할까요. 감독은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제천과 제주도라는 두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슷하면서 다른 이야기’.

물론 홍상수 영화는 그 특유의 스타일이 있으니까 이런 느슨한 설명만으로도 감을 잡는 관객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가 처음이라면 참으로 낭패스러운 일이죠. 한두 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 힘든 영화, 혹은 줄거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화. 차라리 이게 정답입니다. ‘그냥 홍상수 영화’. 이처럼 감독의 개인적 미학·철학·스타일이 두드러진 영화를 ‘작가(주의)영화’라고 하는데 예술영화의 상당수가 작가영화를 뜻합니다. 국내에서는 홍상수·박찬욱·김기덕 감독 등이 대표적이죠.

사실 영화라는 게 기획·투자에서 제작·개봉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화된 단계를 거치는데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이 과정에서 표준화된 흥행 공식, 제작 공정을 따릅니다. 알려진 대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는 영화에 대한 최종 편집권을 감독이 갖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중간에 감독이 바뀌는 일도 적잖고요.

이처럼 흥행 수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검증된 틀에 따라 기획되고 제작되는 영화를 상업·장르·대중영화라고 한다면 예술·작가영화란 한 명의 창작자로서, 대체 불가능한 감독이 자기 세계를 마음껏 펼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감독 이름 하나로 믿고 선택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다양성영화-작고 힘없지만 도발한다

이번엔 독립영화입니다. 대개 저예산영화와 묶여 다니죠. 대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대자본으로부터 독립됐으니 기성 가치와도 날카롭게 각을 세우는 도발적 영화가 많습니다. 기성의 도덕률, 고정관념 등을 통렬히 비판하며 마이너리티를 옹호하는 영화들입니다. 오랫동안 정치적 억압기를 지내온 한국 사회의 독립영화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로 정치적 이슈를 많이 다뤘지요. 최근에는 좀 더 다양한 소재와 화법으로 그 외연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국민영화’ 반열에 오른 ‘워낭소리’나 해외 영화제를 휩쓴 ‘똥파리’ 등이 대표적인 경우지요.

실험영화도 있습니다. 이야기 중심의 상업영화와 달리 영화적 형식, 매체의 본질을 고민하는 영화들입니다. 아예 내러티브를 중시하지 않는 실험영화들은 미술과도 영역이 겹쳐집니다. 미디어아트, 비디오아트, 각종 설치미술과 만나게 되는 거죠.

다양성 영화란 이처럼 예술·작가·저예산·실험영화들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입니다. 비상업영화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지요. 상업영화의 자본과 제작 규모에 빗대 ‘작은영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관객의 다양한 취향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영화들이, 소수 상업 대작들이 극장가를 싹쓸이해 버리는 ‘배급의 독과점’ 현상 속에서 마땅한 상영 공간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는 거지요.

예술영화 전용관-이들을 위해 태어났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예술영화 전용관들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런 다양성영화의 상영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1년에 219일 이상 예술영화(다양성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오랜 개성적인 단관 극장에서 멀티플렉스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을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묶어 운영을 지원하는 것이지요. 2002년 2개 극장에서 시작된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에는 2009년 전국 27개 극장, 29개 상영관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www.artpluscn.or.kr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 동네 예술영화 전용관은 어디에 있는지, 옆의 표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외 기타 다양성영화 전용관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이 봄, 당신의 영화적 취향을 좀 더 개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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