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게임등 분야 매니어 공유하고 인정받기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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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매니어들은 누가 뭐라건 '일편단심 민들레' 였다.

나만 좋으면 된다고 할까. 그래서 배타적이니 폐쇄적이니 하는 비난도 곧잘 쏟아진다.

요즘은 좀 다르다.

침투하려 하고, 공유하려 하고, 인정받으려 한다.

특히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 '젊은 애들' 이 몰두하는 분야에서 더 그렇다.

지난달 말 거평프레야에서 사흘간 열린 나우누리.하이텔.유니텔 RPG동호회 주최의 '98 RPG컨벤션' 행사. 제목만 봐선 정체파악이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RPG는 롤플레잉 게임 (Role Playing Game) 의 약자로 참여자들이 각자 캐릭터를 가진 역할을 맡아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놀이다.

판타지소설과 연관이 깊다.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즐기는 층은 그리 두텁지 않다.

그렇다면 집회란 의미를 가진 '컨벤션' 을 붙인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담당자 김기웅 (20.한양대 사학과) 씨의 설명. "알면 알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RPG가 너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좀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다는 취지에서 소개의 장을 마련했다."

행사내용은 팀과 관련회사에서 차린 부스전시.즉석플레이.강연.토론 등으로 이뤄졌다.

이 행사에서 '롤플레잉인가, 게임인가' 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주최한 서울대RPG연구회. 95년 만들어져 각기 다른 전공의 6명이 일주일에 한번 모여 게임을 하고 게임을 연구한다.

게임에서 설정된 가공의 사회상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기도 한다.

RPG에 대한 소개와 분석, 그리고 '게임문화로서의 RPG에 대한 생각' 을 모아 두권의 회지로 묶었다.

회원인 김형진 (22) 씨는 자신들의 활동을 "주류문화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의 하나" 라고 표현한다.

한걸음 더 나아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애니메이션 동아리 '애니 뮤' 를 들여다보자. 자체상영회도 중요하지만 대중문화 일반에 대한 세미나는 필수다.

만화를 알기 위해 문화론.기호학.포스트모더니즘 등에 관한 이론서를 읽고 토론하는 거다.

무엇을 위한 노력일까. 회원 고동일 (24) 씨는 "애니메이션 매니어들은 결코 폐쇄적이지 않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대중문화의 어엿한 영역으로 위상을 찾아 좀더 많은 이들의 문화가 됐으면 해서다" 고 말한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가령 하이텔 애니메이트 동호회의 권대석 (29) 씨의 경우가 그렇다.

학부생때 일본만화 열풍을 만화팬으로서 몸소 겪으며 "만화에도 이론이 필요하고 체계가 있어야겠다.

그래야 인식도 달라지고 애호층도 넓어진다" 고 생각했다. 96년 만화잡지에 강경옥씨의 '별빛 속에' 로 평론을 냈던 것도 그런 발상에서였다.

매니어의 진정한 욕망은 좋은 것을 독점하는게 아니라 공유하는 것. 그래서 문화는 자꾸 퍼져나가나 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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