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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무인'방송사 콧대 낮춘다…'시청자 주권시대' 도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방송의 주인은 누구인가.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시청자' 가 되겠지만 현실 속에선 '방송사' 라 대답하는 게 정답에 가깝다.

틈만 나면 '공영성' '시청자 주권' 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시민들의 의견을 화면에 반영하는 것엔 인색한 게 방송사들이다.

그러나 이제 교과서 정답처럼 '시청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머지않아 통과될 것으로 기대되는 여당의 통합방송법안. "시청자는 방송의 주인으로서 방송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권익보호 조항 명문화를 비롯, "방송사 인.허가 심사시 시청자의 의견을 중시한다" 는 등 혁신적인 주권 보호 내용이 담겨있다.

서울YMCA.여성민우회 등 시청자 운동을 벌여온 시민단체들도 '시청자 심의 요청권 신설' 을 포함한 각종 권리 신장 조항을 통합방송법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며 연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이런 흐름에 가장 활력을 주고 있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권리 찾기' 움직임이다.

이미 많은 시청자들이 PC통신 등을 통해 잘못된 방송사의 행태를 고발하고 프로그램의 문제점들을 지적.공론화하고 있다.

지금 유니텔에서 벌어지고 있는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를 둘러싼 토론이 대표적 사례. 생전 TV에 나와본 적이 없는 시골노인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웃음의 소재로 만든 이 프로가 7일 첫 방영되자 시청자들은 PC통신에 항의하기 시작했고 결국 방송위원회는 16일 "어른을 공경하는 국민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저해한 것" 이라며 '주의' 조치를 내려 시청자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서세원…' 에선 노인을 스튜디오로 불러 외래어 단어 퀴즈를 풀게하는 등 골격을 바꾸지 않자 대학생 허혜정 (23.여) 씨가 유니텔에 토론을 제의해 지속적인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허씨는 "SBS의 시청자 의견 접수란에 고발했지만 소용이 없는 것 같아 이 같은 활동을 펴게 됐다" 고 밝혔다.

더욱이 상황은 이달 초 개편에서 시청자 의견을 반영하는 프로 'TV를 말한다' 를 폐지한 SBS측의 태도와 맞물리고 있어 귀추를 주목시킨다.

"노인들을 황금 시간대에 모시고 싶었다" 는 제작진들의 주장과 "노인을 소재로 삼아 젊은이들을 웃기려는 발상" 이라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현상황의 향후 전개는 시청자 권리 현주소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도 방송사들의 '시청자 무시' 에 다각적인 전술로 맞서고 있다.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02-737-0061) 측은 지난 1월 어린이 프로 앞뒤에 선정적인 자사 프로그램 광고가 많다는 견해를 모아 편성.제작 담당자에 항의전화 걸기 운동을 벌였다.

회원 10여 명이 1조가 돼 매일 교대로 전화한 결과 적지 않은 개선효과를 얻었다.

YMCA 이승정 부장은 "방송사의 시청자 민원 접수 창구로 전화를 걸면 거의 효과가 없으니 직접 제작.편성 책임자에게 전화하거나 시민단체로 연락하는 것이 효과적" 이라고 충고한다.

아울러 각 단체들은 통합방송법 통과 이후 '방송사에 대한 민사소송' '광고주 상품 불매운동' 등을 새로운 운동방법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방송위원회의 시청자부 (02-3219-5114) 또한 유용한 기관. 방송위 김성욱씨는 "방송사에 전화했다 무시당한 뒤 화가 나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며 "방송위에선 법적 제재까지 가능하다" 고 많은 신고를 당부했다.

정치권의 입법 움직임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권리 찾기 운동이 맞물리면서 앞으론 방송사의 시청자 대접은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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