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브랜드’ 큰별들 속에서 더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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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24일(현지시간) 폐막한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3등에 해당하는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사실 ‘박쥐’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 국내 영화계 기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번 칸 경쟁 부문 진출작 면면이 ‘별들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쟁쟁했기 때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제인 캠피언 등 과거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한 번씩 가져갔던 감독은 물론 페드로 알모도바르, 미하엘 하네케, 리안 등 소위 ‘거장’으로 불리는 이들이 총출동했다. 박 감독 자신조차도 칸으로 출국하기 전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만 해도) 이미 상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영화계에서도 “(저렇게 거장이 많은데) 설마 받겠느냐”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박쥐’는 예상을 깨고 힘차게 날아올랐다. 박 감독으로서는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데 이은 두 번째 쾌거다. ‘올드보이’의 행운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박 감독은 28일 귀국 기자회견을 연다.

◆‘박찬욱 브랜드’, 세계 속에 꽃피다=‘박쥐’ 수상에 대해 인간의 죄와 구원을 다루는 파격적이고 논쟁적인 주제와 형식이 칸의 전통적인 취향과 부합했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평이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인정받았지만, 감독의 인지도와 출신 국가의 문화예술적 위상 등 보이지 않는 요소를 중시하는 칸의 ‘정치학’도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전찬일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박찬욱 감독이 ‘올드 보이’ 이후 ‘제2의 왕가위’라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월드스타로 떠올랐고, 그 위상을 올해 칸이 재확인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감독은 ‘올드 보이’ 이후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을 잇따라 발표하며 세계 영화계에 ‘작가(auteur)’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시아 영화의 강세로 나타난 심사위원들 취향도 수상을 도왔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는 아시아 영화가 5편이나 경쟁작으로 선정됐고, 이 중 ‘박쥐’를 비롯해 3편이 본상을 수상했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래 한국영화가 대외적으로 축적해온 에너지도 ‘박쥐’의 수상을 막후에서 지원한 요인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박찬욱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올해 칸에는 ‘주목할 만한 시선’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감독주간에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초청된 것을 비롯해 등 여러 부문에 걸쳐 10편이 초청받아 그 어느 해보다 한국 영화가 두각을 나타냈다.

◆황금종려상은 ‘하얀 리본’=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의 영광은 독일 감독 미하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에 돌아갔다. ‘하얀 리본’은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둔 독일의 한 학교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건이 파시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한 작품이다.

하네케와 칸의 인연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한 ‘피아니스트’로 심사위원대상을 탔고 2005년 ‘히든’으로 감독상을 탔다. 2등상 격인 심사위원대상은 자크 오디아르(프랑스)의 ‘예언자’가 받았고 , 안드레아 아놀드(영국)의 ‘피시 탱크’는 ‘박쥐’와 심사위원상을 공동수상했다.

감독상은 ‘키너테이’(브리얀테 멘도사, 필리핀)에게, 남녀주연상은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쿠엔틴 타란티노, 미국)의 크리스토퍼 왈츠와 ‘안티크라이스트’(라스 폰 트리에, 덴마크)의 샤를롯 갱스부르에게 돌아갔다. 각본상은 루예(중국)의 ‘스프링 피버’가 수상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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