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을 찾아서]김주영 장편소설 '홍어' 불황 출판가 새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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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진작가 김주영 (金周榮.59) 씨의 장편소설 '홍어' (문이당刊)가 독자들을 본격 문예 미학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달 초 출간된 이 작품은 한달 보름 만에 5만여 권이 팔리며 전국서점조합연합회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공동 집계한 '금주의 베스트셀러' 종합 5위에 올라 있다.

한 세대 전 산골마을의 궁핍한 삶과 세상살이에 눈 떠가는 과정을 소년의 맑은 눈을 통해 서정적으로 그린 이 작품이 독자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는데 문단과 출판계는 고무돼 있다.

독서계가 이제 번역 오락물이나 대중.상업물에 대한 거품을 걷고 본격 문예물로 돌아오고 있단 판단에서다.

출판평론가 김영수씨는 "베스트셀러 하면 화제 거리에서 혹 뒤질세라 무조건 사보았다.

올해부터는 독자들도 그런 거품형 독서행태에서 깨어나 신중하게 책을 고른다.

때문에 가벼운 유행성 소설보다 작품성 높은 순수문학 쪽으로 돌아오고 있다" 고 했다.

'홍어' 에는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14세 소년과 어머니, 그리고 한 처녀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읍내 술집 아낙과 눈이 맞아 6년전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가오리연을 만들어 소년에게 저 세상 멀리멀리 날리게 하고 부엌 문설주에는 가오리연을 닮은 홍어를 걸어놓는다.

집 떠난 아버지의 별명은 홍어. 그 홍어를 영영 날려버리고픈 심정과 반대로 문설주에라도 붙들어 메어놓고 싶은 심사가 교차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소년의 집에 오갈 데 없는 처녀가 찾아들어 살림을 돕는다.

그 처녀는 밤이면 온 동네와 들판을 꿈처럼 황홀하게 누비고 다니는 몽유병 환자. 바람에 휘날리는 민들레 꽃씨 같은 처녀의 환상적 모습에서 소년은 최초의 '여성' 에 눈뜨게 된다.

6년간 긴 기다림 끝에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어머님은 다시 새색시가 된 심정으로 아버지를 맞아들인다.

그러나 하룻밤을 보낸 어머니는 아들도 모르게 훌쩍 집을 떠나버리고 만다는게 '홍어' 의 기둥줄거리다.

서점 관계자에 따르면 이 책은 20~50대에 걸치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40~50대에게는 자신이 지나온 두메산골의 소년 시절을 조용히 회상하며 고단한 현대생활에 위안을 주고 20~30대 독자에게는 자신과 부모 세대의 성장기를 비교하며 기다림과 떠남, 그리고 거기서 우러나는 한 (恨) 등 한국인 삶의 원초적 모습을 수채화같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의 눈에 해맑게 잡힌 한국인 원래의 삶의 모습이 농촌 황토 세대와 도시의 아스팔트 세대의 정서를 소통케 한 것이다.

'홍어' 의 이같은 폭넓은 독자층과 대중적 성공에 대해 작가 김씨는 "앞다퉈 첨단을 향해 나아가고만 있는 시대, 우리 전통적 삶의 뿌리를 돌이켜 보려했다.

소년의 눈을 통해 따뜻하면서도 깨끗하게, 무엇보다 작가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려한 문장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 같다" 고 밝힌다.

정확한 취재로 인해 발로 쓰는 작가 김씨는 현재 SBS - TV와 함께 흑산도를 비롯, 남해안으로 우리 토종 홍어를 찾아 떠났다.

외국산에 비해 '일부일처제' 를 고집하는 토종 홍어의 생리와 톡톡 쏘는 참 맛은 본지에 연재중인 소설 '아라리 난장' 의 건어물 난장꾼들에 의해 곧 독자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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