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땡'시장에 외국인 큰손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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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중구 을지로6가 동대문시장 주변 동화상가에서 넥타이 도매상을 하는 崔모 (31) 씨는 최근 뜻하지 않게 굵직한 수출계약을 한건 올렸다.

싱가포르에서 날아온 바이어에게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넥타이 10만장을 한꺼번에 팔기로 한 것. 평소 해외 바이어가 찾아와도 많아야 2만~3만여장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규모인 셈이다.

찜찜한 것이 있다면 판 물건들이 신제품이나 매장에 걸린 유행상품들이 아니라 전부 창고에 처박아 놓았던 재고.이월상품이라는 점. 판매가는 장당 4백원으로 공장도가 (1천원) 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崔씨는 그래도 재고부담을 덜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 이같은 외국의 '땡처리' 업자들이 우리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전부터 러시아.중국 등의 보따리상들이 찾아왔지만 거래규모에서 이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외국의 땡처리업자들은 신제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극심한 내수 (內需) 부진으로 국내에서 소진되지 못한 재고.이월상품들이 관심품목이다.

땡처리 전문업자인 김남우 (35) 씨는 "IMF 이전엔 땡처리 상품 수출을 국내 업자들이 맡았지만 최근 홍콩.인도.남미.중동 등지의 땡처리 전문 무역상들이 직접 들어와 덤핑 또는 재고상품만 쓸어가고 있다" 고 말했다.

땡처리 시장도 '국제화' 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중국의 청바지 유통업자들도 앞다퉈 국산 청바지를 사가고 있다.

땡처리물건으로 나온 국내 청바지값이 중국보다 싸졌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동대문시장 등에선 청바지 물량이 달리는 사태도 빚어지고 있다.

외국인 땡처리업자들은 동대문시장에만 50~60여명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국내의 땡거래 관행처럼 모두 현금으로 결제해 주는데다 거래규모가 1억원대를 훌쩍 뛰어넘어 상인들에겐 '큰손' 으로 통한다.

이들은 시장은 물론 공장까지 직접 찾아가 물건을 수집하며, 소위 '나카마' 로 불리는 국내 중간상인들을 통역 겸 중개역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상인들은 외국 땡업자들과의 거래가 '빛 좋은 개살구' 에 불과하다고 우려한다.

남대문시장 마마아동복상가 최해천 상우회장은 "파는 가격은 공장도가에도 못미쳐 사실상 손해" 라며 "무작정 재고를 안고 있을 수만도 없어 '울며 겨자먹기' 로 물건을 내놓는다" 고 씁쓸해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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