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 작곡 전공 바꿔 세계 무대에서 ‘퀸’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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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조은화(36)씨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작곡가로 23일 선택됐다. 조씨는 2년마다 열리는 이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우승(Grand Prize)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이 대회가 시작된 1953년 이후 한국인이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곡 부문에서 여성이 우승한 것도 콩쿠르 역사에서 조씨가 처음이다.

작곡가 조은화씨는 이번 콩쿠르 수상으로 음반 녹음 등 작품 발표 기회를 얻게 됐다. “1악장만 완성한 것으로 상을 받았는데, 이른 시일 내에 전체를 완결짓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조은화 제공]


“한국인 최초, 여성 최초라는 결과는 상상도 못했어요.” 브뤼셀에 머무르고 있는 조씨는 들뜬 목소리로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장학금 신청을 위해 썼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었어요. 마침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이 과제로 나와 보내본 거죠.” 그의 작품은 세계 각국 출신 158명 작곡가가 제출한 협주곡 중 1위로 뽑혔다.

독일어로 ‘Agens(행위)’라는 제목을 붙인 14분짜리 바이올린 협주곡은 구조적인 진행과 독특한 음향으로 호평을 받았다. 작곡가가 머리속 음악을 악보에 옮기는 것과 연주자의 해석을 ‘행위’라는 관점에서 묶은 생각이 들어있는 음악이다. 조씨의 우승곡은 이달 30일 콩쿠르의 바이올린 부문 결선 진출자 12명이 연주해 실력을 겨루게 된다.

◆전공 바꾸고 훨훨=“작곡을 하게 된 계기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부산 출신으로 부산여고를 나와 서울대 음대 작곡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어렸을 때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기억했다. 4살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예술고등학교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작곡으로 전공을 바꿨다. “무대 체질이 아니었어요. 주목받는 것을 즐기지도 못했고. 그런데 음악은 꼭 해야겠더라고요.”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면서 한스아이슬러 작곡상, 바이마르 작곡상 등으로 타고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친 후 귀국했던 그는 다시 ‘의도된 변화’를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음악을 할 수도 있죠. 학교에 소속돼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꽤 흥미로웠고요.” 하지만 그는 본인의 가능성을 좀 더 열어볼 마음으로, 프랑스 파리를 다음 목적지로 택했다. 프랑스 정부 지원으로 파리에서 운영되는 ‘라 시테 데자르(국제예술공동체)’의 후원을 받게 돼 이 도시에서 작품 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벨기에 브뤼셀에서 해마다 열린다. 차이콥스키, 쇼팽 콩쿠르 등과 함께 음악인에게 ‘꿈의 무대’로 꼽히는 대회다. 벨기에의 왕비 엘리자베스트폰 비텔스바흐의 이름을 땄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피아노·1956년),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1937년) 등 손꼽히는 거장들이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역대 한국인 최고 등수는 배익환(바이올린·1985년)의 2위. 이달 30일 열리는 바이올린 부문 결선 진출자 12명 중 4명이 한국인이어서 수상에 대한 기대가 높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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