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6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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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철규가 제공한 커피로 말문이 열리기 시작한 두 여자는 철규의 신상에 대해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고백했던 외장꾼 6년째란 대답이 아무래도 미심쩍었던지, 꼬치꼬치 따지고들어 진땀올 빼게 만들었다.

나중엔 주소지까지 물었는데, 물론 주문진의 변씨집 주소를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손발까지 유심히 관찰해가며 의혹에 찬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쑥 내일은 어느 장을 보느냐고 물었다.

"정선장과 봉평장은 2일과 7일에 열리고, 진부장은 3일과 8일장이고, 영월은 4일과 9일장이죠. 평창과 임계장은 5일과 10일에 열리기 때문에 그날의 날씨와 고장 풍속이며 명절날을 참작해서 찾아갈 장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변씨와 봉환이가 저만치 신발전 모퉁이로 모습을 드러내자, 두 여자는 돈 많이 벌라는 덕담을 남기고 난로가에서 비켜났다.

분명히 두 사람이 삿대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사라졌다가 좌판으로 돌아온 두 사람의 표정에선 뒤틀린 심사를 전혀 눈치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축 처진 어깨들에 힘담도 없어서 어딘가 시들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장터 모퉁이로 비켜나 조용하게 화해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긁어서 부스럼 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철규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명절도 지나간 한겨울 장터란 원래가 스산한 편이지만, 아침나절에 내렸던 눈발 때문에 장꾼들의 모습도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으므로 그들은 일찌감치 좌판을 거두기로 하였다.

좌판으로 배달되는 국밥으로 창자를 달랜 다음 영월 (寧越) 로 갈 채비를 서둘렀다.

진부에서 영월까지는 2백리 노정에 가까운 수월찮은 길이었다.

그러나 강원도 내륙에서는 큰 장이 서는 곳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이번 장돌림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장이었다.

봉환이가 야간운행에 이골난 운전사라 하더라도 빙판길이 가로놓인 노정이었기 때문에 일단 평창까지만 길을 줄여서 숙소를 찾기로 하였다.

좌판을 거둬 적재함에 옮겨 실은 다음, 내내 시큰둥해 있던 봉환이가 땅거미 식당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변씨로부터 승희의 말을 듣게 된 것은 그가 사라진 후의 일이었다.

"한선생. 어떻게 보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 불거진 것 같아. 두 사람이 혼인신고까지 한 사이는 아니라지만, 내연의 관계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데, 두 사람의 금실이 생각보단 매끄럽지가 않은 모양이여. 지난밤에 내가 물 떠먹으러 나갔다가 봉환이가 주방에 있던 그 여자를 끼고 자는 걸 봤거든. 승희를 봐서도 차제에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고 내가 몇 마디 쥐어박으려는데, 오히려 내가 뒤통수를 얻어맞았어. 두 사람이 한 지붕 생활한 지가 며칠 되지는 않지만,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야. 승희가 봉환이에게 사내 대접을 않고 있다면 그게 말이되나? 우리 네 사람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면전에서 종결이 난 일이기도 하지만, 남녀가 같은 방에 누워서도 이때까지 한 번도 찡하게 품어본 일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야. 그러나 봉환이가 성미는 급하지만, 거짓말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위인은 아니거든. 승희 저러다가 몽둥이질 당해서 등줄기에 난초친 꼴 당하지 않을까?" 놀라운 일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원인이 철규에게 있다고 믿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어젯밤, 그 식당에서 벌어졌던 일은 승희에 대한 보복심리 같은 것이었네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앙금이 있다 하더라도 형님과 나는 모르는 척 합시다.

따지고 보면, 엄연히 남의 가정일이죠. 일이 있을 적마다 무턱대고 간섭하고 덤비다 보면, 두 사람 사이가 더욱 악화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월정사의 일은 발설한 적이 없지요?" 변씨는 펄쩍 뛰었다.

그는 눈자위까지 부라리며 철규를 면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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