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부모姓 함께 쓰기' 확산…호주제도 폐지도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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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고은광순 (43) 씨. 이름이 어딘가 어색하다.

아버지가 물려준 '고' 씨와 어머니의 '은' 씨를 함께 사용하고 있으니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최근들어 그와 같은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여성의 날' (3월8일) 이후 일이다.

여성운동계의 이이효재.지하은희씨나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 PC통신 '스타' 신정모라씨, '허벅지 밴드' 의 안이영노씨 등등. 여성단체에 소속된 사람의 명함엔 어김없이 이런 성이 새겨져 있으며 이제는 평범한 부부가 합의를 통해 아이의 성을 두자로 정하기도 한다.

이름하여 '부모 성 (姓) 함께 쓰기 운동' .이유는 이런 것이다.

"한국에서 남녀 성비 (性比) 불균형은 심각하다.

남아선호사상은 부계 (父系) 혈통만 강조하는 데서 비롯된다.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고치기 위해서는 생활차원의 문화운동인 부모 성 함께 쓰기가 필요하다. "

여성들이라면 예외없이 귀가 솔깃해지는 '호주제 폐지' 도 같은 맥락이다.

왜 호주제가 문제일까. 그 역시 골깊은 '남아선호 사상' 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에서다.

민법이 정하고 있는 호주 승계순서는 아버지 - 아들 - 손자 - 딸 - 어머니 순. 대를 이어가자면 '반드시' 아들이 있어야 한다.

딸이나 어머니가 호주가 될 경우 그가 사망하면 호적은 말소되고 만다.

딸이 호주승계자일 경우 그와 결혼한 남자가 호적을 여자집으로 옮기고 아이들도 엄마성을 따르는 입부혼 (入夫婚) 이 합법이라지만 현실적으로 아직은 언감생심이다.

일본의 경우는 이미 2차대전 후 부부와 미혼자녀를 기본으로 하는 호적제를 만들었고 지금은 개인별 호적제 운동을 벌여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유림뿐 아니라 대다수 남성에게 호주제 폐지를 설득하기에 아직 역부족이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자체에도 걸림돌은 많다.

우선은 특정한 성에서 생기는 문제. '임신' '강도' '황구' 등이 그것이다.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중국처럼 부.모의 성 중 하나를 골라 쓰기, 아니면 모계 성만 쓰기, 아예 성을 안쓰기…. 부모의 성을 동시에 딴 경우에도 호적에는 어머니 성이 이름에 붙어 등재되니 의미는 반감되고 만다.

굳이 자평 (自評) 을 한다면 난공불락의 '부계 성' 을 일단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목표는?

운동의 확산, 나아가 호적법 개정, 호주제 폐지. 길은 멀지만 여성운동가들은 이대로 멈춰설 것 같지 않다.

김현정·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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