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구파 의원들 크게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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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1번지 국회 주변의 가로등은 요즘 몸살을 앓는다. 각종 국회의원 모임의 토론회와 세미나 등을 알리는 현수막들 때문이다.

17대 국회의 새 현상 중 하나가 '공부하는 의원들'이다. 특히 역대 가장 많은 초선의원(전체 299명 중 187명)을 보유한 상황에서 면학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초선들이다. 지난 10일 현재 국회사무처에 등록된 48개의 국회의원 연구단체 중 절반에 가까운 20개는 회장이 아예 초선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과거 중진.다선 의원들이 준(準) 계파모임의 일환으로 활용하던 연구단체가 순수 공부모임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의 '노동기본권 실현 국회의원 모임', 초등학교 교장 출신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의 '국회 좋은교육연구회' 등 전문분야를 살린 모임이 대부분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열린우리당 정덕구 의원은 한나라당(29명).민주노동당(2명).민주당(2명) 등 여야 의원 78명이 참여한 초 정파적 연구단체인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을 등록했다.

개원한 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국회에는 벌써 132개의 법률안이 접수됐다. 이 중 77건이 의원 발의다. 16대 국회 개원 후 1년간 의원 발의 법률안은 총 397건으로 역대 최다였다. 하지만 17대 개원 초기 한 달간의 의원 발의 법률안이 벌써 16대 개원 1년간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입법정보 질의 현황도 17대 국회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25일까지 한 달간 국회의원들의 입법정보 질의 건수는 255건으로 16대 국회 같은 기간 55건의 5배다.

정호영 국회도서관장은 "젊은 초선의원이 크게 늘어서인지 귀찮을 정도로 입법활동에 대한 문의가 많다"며 "박사급 인력 22명인 입법조사연구관들이 코피를 쏟을 지경"이라고 했다. 물론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제식구 감싸기'와 개원협상에서 드러난 정파 싸움 등 17대 국회는 여전히 퇴행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싹트기 시작한 변화가 꽃을 피우기 위해선 여론의 채찍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 도서관장은 "17대 의원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법 만들기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성공한 국회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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