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살아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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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축 처져 있던 미국 경제의 어깨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관료들은 전에 없이 희망적인 말을 쏟아내고, 곤두박질했던 주식시장은 슬금슬금 올라 연초 수준을 다시 넘보고 있다. 금융위기의 출발점인 주택시장에서도 일부 긍정적인 지표가 나온다. 비관론자들마저 “일단 최악은 넘겼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뉴스위크 주최 오찬간담회에서 “미국 경제가 안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지표에서 경기 하강 속도가 꽤 둔화했으며 이는 (회복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루 전 CNN에 출연한 피터 오재그 백악관 예산국장은 한술 더 떴다. “미국 경제의 자유낙하가 멈췄다”며 “앞으로 몇 달간 상황이 개선되고 재정적자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조지타운대 연설에서 “아직 어렵지만 처음으로 희망의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에 비해 훨씬 더 나간 것이다.

실제로 긍정적인 경기지표들이 상당수 나온다. 전미주택건설협회(NAHB)가 발표하는 주택시장지수는 두 달 연속 전월 대비 상승했다. 주택 건설업체들의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이 지수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반면 주식시장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 지수는 18일 리먼 파산 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오재그 백악관 예산국장이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시장은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3월 초 6500선까지 떨어졌던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18일 8504.08로 장을 마쳤다. 두 달여 만에 30% 가까이 뛰었다. 한국의 코스피지수와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증시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세계경제가 올해 말이나 내년에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며 “(침체가) 2011년까지 가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낙관론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최악을 넘겼다는 것이 곧 경기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전문가인 서강대 김경환(경제학) 교수는 “미국 주택시장의 봄날을 얘기하긴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3월 기준으로 매물로 나와 있는 미국의 기존 주택 재고는 월평균 거래량의 9.8배에 이른다. 11배까지 치솟았던 지난해 11월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평균(5~6배)보다는 여전히 훨씬 높다. 동양종금증권 이철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반적인 경제위기 때는 금리를 내리면 가계소비가 살아나 경기 회복이 빨라지지만, 주택 거품 붕괴로 생긴 위기는 가계가 빚을 줄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소비 부진이 회복을 더디게 한다”고 말했다. 고용시장 사정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요 금융사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8.9%인 미국 실업률은 연말엔 9.7%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소비 대국인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세계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JP 모건 임지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아직은 청소해야 할 금융 부실이 남아 있는 상태”라며 “회복은 아주 느리고 완만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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