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분야 골라 마음껏 공부
필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건축에 관심이 있었지만 정확히 건축이 어떤 학문이며 건축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전혀 몰랐다. 이 때문에 5년제 건축 전문 학교가 아닌 4년제 종합대학의 건축학과를 선택했다.
미국에선 절반 이상의 학생이 대학에 지원할 때 기입했던 전공 이외의 전공으로 전과를 한다. 심지어 전공을 정한 후에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새로운 전공을 택하기도 한다. 입학 시 전공을 정하면 바꿀 수 없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전공 변환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클리에서는 4학년 재학 중에도 전공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학과별로 제시하는 커리큘럼을 만족하면 졸업이 가능하다. 저학년 때 기본 과목을 잘 수강해 놓으면 3학년 때는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경영대 등 일부 단과대는 희망자 중 일부를 선발하기 때문에 지원 조건을 충족한 후 원서를 내야 한다.
전공의 자유뿐 아니라 부전공 및 복수 전공 프로그램도 잘 갖춰져 있다. 버클리의 건축학과에서 제공하는 구조공학과 도시 설계 부전공 프로그램은 선택에 제한이 거의 없다. 전혀 다른 분야인 역사나 인문학·공학 등을 복수 전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 대학은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공부하는 곳이다. 저학년을 충실히 보낸다면 더 의미 있는 3, 4학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연구활동에 학부생 참여 기회 많아 기본기 쌓는 데 도움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런 연구 활동에 학부생의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생물학과에서는 연구실 보조 등의 일은 대학원생보다 오히려 학부생에게 더 많이 주어질 정도다. 그 덕분에 학부생이 연구에 익숙해지고 대학원 진학을 위한 탄탄한 기본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연구 중심의 사립대나 대형 주립대에서는 학부생보다는 대학원생에 맞춰 모든 시스템이 돌아간다. 이에 따라 강의 또한 대학원생 조교가 맡는 일이 적지 않고 교수와는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불평이 자주 나오곤 한다.
브라운대에서 학부생이 연구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싶을 때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은 어떤 교수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프로필을 자세히 읽어보고 e-메일로 자신의 이력서를 보내는 것이다. 또한 학과 사무실에 가서 여름 아르바이트 목록을 뒤져보기도 한다. 이 목록에는 해당 학과의 교수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몇 명의 조교를 둘 계획인지, 기간은 언제까지이고, 보수는 어느 정도인지가 자세히 나와 있다.
브라운대 학생은 관심 분야의 연구를 학부에서부터 시작해 탄탄히 실력을 쌓아나간다. 함께 연구하며 쌓은 교수와의 친분 덕택에 호의적인 추천서가 나올 확률도 높다.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해서인지 브라운은 대학원 진학이나 프로페셔널 스쿨로의 진학 실적이 매우 좋은 편이다.
연구보다 강의에 관심 큰 교수진 … 좋은 관계 맺기 쉬워
연구원이 되어 줄 대학원생이 있고 크기에 맞는 수준 높은 연구 기자재를 보유한 대형 대학의 교수는 강의보다는 자신의 연구에 많은 힘을 쏟는다. LAC에 대학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학교 전체의 자원과 정성이 학부 학생에게 집중된다는 것을 뜻하며,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LAC의 교수진은 대부분 교육 자체에 열정을 가지고 있고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개방적이다. 모든 수업을 교수가 직접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며 학생 수가 적어 상담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필자도 한두 명 교수와는 “교수님, 오늘 멋지신데요. 데이트라도 있으세요”라고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다. 대학 측도 이런 분위기를 바람직하게 생각해 여러 프로그램으로 학생과 교수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학생이 교수를 초청하여 저녁식사를 할 때 학교가 그 식대를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과 교수의 돈독한 관계는 LAC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