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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의 캠핑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엄홍길 대장의 캠핑스토리
산행하기 맞춤한 계절. 패밀리 캠핑족이 솔솔 늘고 있다. 가족간 정도 쌓고 아이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맛보게 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막상 떠나자니 막연하기 짝이 없다. 캠핑이란 어떤 의미일까. ‘산 사나이’ 엄홍길 대장의 얘기를 듣노라면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도 같다. 프리미엄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


엄홍길 대장과 아이들이 함께 한 어느 5월의 캠핑.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놀던 도봉산부터 히말라야 16좌 등정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공부에 시달린 아이들에게 별천지 소식이다.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텐트치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산을 닮아가는 시간

엄 대장의 집 앞마당. 아이들이 텐트를 치며 캠핑 준비에 한창이다. 잠시 고개를 드니 인수봉이 눈에 찬다. 진경산수가 따로 없다. 바비큐파티로 저녁을 먹고 나니 멀리 산 너머로 해가진다. 호젓이 불 밝히는 가스등이 운치 있다. 고요를 깨는 엄 대장의 얘기에 아이들의 귀가 종긋 선다.“캠핑은 가슴 설레는 일이지. 아저씨도 어릴 적에 ‘허클베리핀’이나 ‘톰 소여의 모험’을 읽으며 캠핑에 대한 환상을 키웠어. 오늘은 아저씨 집 마당에 친 텐트에서 일일 캠핑 체험을 해볼까.”
 
엄홍길 대장과 캠핑을 하기로 한 날. 아직 캠핑에 큰 관심이 없는 새침데기 마리(초등6·사진 左)와 캠핑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 태우(초등2·사진 中), 그리고 모험이나 탐험에 관심이 많지만 캠핑은 해본 적 없는 용준이(초등5)가모였다. 용준이는 “TV에서 봤을 때 카리스마 넘치는 분 같았는데, 생각보다 인자한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마리는 히말라야 14좌를 완등 했다고 해서 “엄청 체력이 좋은 청년”인 줄 알았단다.
 
엄 대장은 도봉산 자락에서 친구들과 텐트치고 지냈던 것을 첫 캠핑으로 기억한다. 당시도봉산 정상을 바라보며 저 너머에는 무엇이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그가 산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이후 산의 그의 삶터가 됐다. 지금 사는 수유동 이 집도 눈앞에 산이 있어 선택했다.“저녁을 먹고 창문을 열면 해지는 북한산이 모두 내 차지”라는 그는 평소 바쁜 일정 때문에 멀리 캠핑은 못 가고 집 앞 마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 파티의 단골메뉴는 엄 대장의 히말라야 등반 이야기. 아이들에겐 별천지 소식이다.
 
그는 “히말라야를 막연히 낭만적이거나 신비의 땅으로만 생각하는 건 오산”이라고 강조한다. 정상을 목표로 캠핑할 때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심정이 된다. “예전에 가수 이문세씨가 기타를 둘러메고 베이스캠프까지 와서 콘서트를 열어준 적이 있었어. 히말라야에 가면늘 캠핑은 하지만 무게 때문에 기타를 가지고갈 생각을 해본 일이 없거든. 그 건조한 죽음의 땅에 기타 선율과 노래가 흘러나오자 눈물이 막 나오더라고. 먹고 자는 일, 그리고 정상을 향한 비장한 목표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없던 나에게 음악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지.”
 
엄 대장에겐 정상 정복 못잖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 그를 돕다가 죽거나 다친 셰르파들이다. 고마움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네팔의 오지 ‘팡보체 마을’에 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봉우리14+2좌를 올랐으니 앞으로 세계 최고의 정성으로 그들의 자녀를 보살필 생각이란다. 또 한국의 아이들에게도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본인 스스로 한발씩 딛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음을 가르치고 싶다고 강조한다. “가난하다고 좌절하거나 몸이 아프다고 포기하거나, 부자라고 자만하면 안 돼. 무엇이든자신이 한 일로 평가 받는 세상이거든. 강한자가 정상에 오른 것이 아니라 정상에 오른 자가 강한 인간이 되는 거야.”
 
이해하기엔 아직 쉽지 않겠지만 듣는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엄마·아빠 따라서 캠핑도 꼭 해보고, 어른이 되면 히말라야도 가겠다고 다짐한다. 엄 대장 역시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아이들과 진짜 캠핑을 가야겠다고 말한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잘 바라보이는 서울 근교 캠프장에서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텐트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아이들과 살을 맞댄채 맑은 공기 마시며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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