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신임안기부장은 4일 "과거 안기부는 정보를 독점, 통치자만 만족시키는 단선적 서비스를 했으나 앞으로는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히 제공하는 국가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서울시장 출마가 좌절된데 대해서는 "정치인이라면 선거를 통해 자기확인을 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런 기회가 마련되지 못해 섭섭하다" 고 털어놨다.
- 안기부장 통보를 언제 받았나.
"오전11시30분에 알았다.
어제 오후부터 안기부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감이 느껴져 金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미처 말씀을 드리지 못한 채 대임을 맡게 됐다."
- 대통령과 만나 무슨 얘기를 하려 했나.
"국회가 파행으로 끝나고 정국이 경직된데 대해 국정운용 방안에 대한 구상을 진언하려 했다."
- 안기부 조직개편 방향은.
"구체적 복안을 갖고는 있으나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국내 정치공작에서 벗어나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하는 게 대통령을 잘 보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인원감축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 '작고 강력한 정부' 라는 방향에 맞게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조직으로 발전시키겠다."
- 김현철인맥 등에 대한 정리는.
"과거 일부 간부가 사적으로 인맥을 끌어들이거나 계보와 사조직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고 일부 증후가 발견되기도 했다.
공적 업무수행에 적절치 않은 일이다.
가치중립적으로 과감히 개혁해 나가겠다."
- 대북정책 과정에서 안기부가 남북대화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런 지적을 알고 있다.
필요한 정보를 여과해 정책결정의 자료로 활용하도록 서비스하겠다.
적절한 정보제공만 잘 한다면 필요없는 잡음은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 국민과 함께 하는 안기부를 강조했는데.
"정보활동도 이제 국민과 함께 국민 속에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안기부에도 대변인실 등을 둬 수시로 상황을 알리고 국민협조를 구해나가도록 하겠다."
李부장은 92년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 때 김영삼후보에게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정치1번지인 종로에서 네번 당선했고 원내총무.사무총장 등을 지낸 그는 세대교체론을 내세웠다.
그후 DJ진영에 편입해 재기를 시도했지만 96년 총선에서 떨어졌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대중대통령 만들기' 에 전력을 기울였고 대선승리 후 인수위원장이 되면서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부인 윤장순 (尹長順.61) 씨와 1남2녀.
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