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안학교 탐방 ③] 자립교육 도량 '간디학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월의 따가운 햇살이 내리 쬐는 오후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

▶ 간디학교 전경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산청IC에서 빠져 나와 20여분을 더 지나간다.구불구불 시골길을 2㎞ 정도 따라 올라 가다 보면 산 한가운데 조그만 건물 세개가 보인다.대안 학교의 선구자 격인 간디학교다.

학교에 들어서자 100여평의 텃밭에서 학생들이 배추를 뽑고 있다.소위 먹거리 재배를 가르치는 텃밭가꾸기 수업이다.또 다른 한쪽에는 서너명이 나무 그늘에서 앉아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무언가 고민 많은 사춘기 학생의 얼굴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의 임환(2년)군은 "5월말에는 2박3일 일정으로 전 학생이 지리산 종주를 다녀왔다"고 말한다.

▶ 간디학교 기숙사 내부

텃밭을 지나 학교건물에 들어섰다. 1층 교실에서는 7명의 남여 학생들이 커다란 자를 들고 한복 재단에 열중이다.옷만들기 수업 시간이다.대학에서 의류 디자인을 전공할 3학년 여학생이 조교로 나서 서툰 솜씨의 남학생을 돕고 있다.

안인경 교사는 "의식주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간디학교의 수업 목표 중 하나"라며 "텃밭가꾸기와 옷만들기 이외에 집짓기 수업도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간디학교는 현재 고등학교 정규 학력을 인정받는 학력인정 대안학교다.현재 1학년 40명,2학년 20명,3학년 20명 등 80명이 다니고 있다.이들은 서울 출신이 40% 등 대구.부산.광주 등 대도시출신이 70%가 넘는다.

수학 담당 박종하 교사는 "간디학교는 대학 입시 준비 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적성을 찾아가도록 유도하는게 중심인데 소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찾아 오는 학부모들도 더러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수학 수업을 듣기 싫은 학생의 경우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출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간디학교의 아이들은 1,2학년 모두 학교에서 500여m떨어진 기숙사에서 생활을 한다. 기숙사 생활을 통해 그들만의 질서와 공동체적 유대감을 배운다.

올해의 교육 목표은 감성교육과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자립교육이다.

오전에는 자기 수준에 맞게 국.영.수 등 교과 수업을 듣고,오후에는 스스로 선택한 합창.연극.풍물.미술 등 감성교과와 의식주를 해결하는 교과 수업에 참여한다. 오후 수업에는 옷 만들기.요리.목공 같은 것을 배훈다.이렇듯 교과 과정은 유별나다.학교 건물은 폐교를 재활용해 쓰고 있다.이런 환경이지만 지난해 신입생 20명을 뽑을 때는 전국에서 200여명이 몰려들었다.

2학년때는 모두 9주간 호주에 연수를 간다.영어도 배울 뿐 아니라 홈스테이를 통해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맛본다.비용은 4백만원선.

▶ 간디학교 교실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간디학교는 사랑과 자발성 이라는 교육철학을 기초로 운영한다.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정미숙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간디학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가 아닌데도 아이들이 대학에 많이 갑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들의 고집이 세서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로도 자신이 원하는 과를 찾아간다는 거예요. 아이들 말로는 자기들이 일반 학교에 갔어도 더 좋은 대학에 못 갔을 거라고 해요. 간디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공부시간이 30%에 불과하지만 원해서 공부했으니 더 집중할 수 있거든요."

먼저 아이들에게 '꼭 대학이 필요한가'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다음에 대학 진학이 필요하다고 결정한 아이는 열심히 공부할 뿐 아니라 학교도 이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그렇다고 과외나 학원 같은 방과외 수업은 없다.오로지 아이의 자발성에 따른 선생님들의 도움이 전부다.

지난해는 졸업생 가운데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했다.서울의 명문대도 너끈히 진학할 수 있었던 한 남학생은 평소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때문에 장학금을 받고 지방대학 의대에 입학했다.간디학교의 진학지도는 학생이 하고 싶다는 전공이 최우선이다.따라서 대학의 이름보다는 하고 싶은 전공을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간디학교에서 말하는 '자발성'이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도록 돕고 그것을 찾아낸 아이들은 신명나게 밤을 새워서라도 해낸다.

흡연 문제도 이렇게 해결됐다. 3년 전만 해도 기숙사에서 남학생들의 흡연 문제가 심각했다. 학생들은 서로 모여서 흡연 문제를 토론했다. 그리고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지키자고 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2002년에는 흡연이 완전히 사라졌다. 체벌과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흡연이 좋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 간디학교의 옷만들기 수업시간

또 다른 키워드인 '사랑'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간디학교의 교사상은 존경받고 지도하는 선생님이 아니다. 아이들과 사랑과 신뢰,우정을 쌓을 수 있는 친근감있는 도우미 역할이다.

간디학교에는 이같은 환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도 많다. 내신 성적때문에 한 학년 20명의 석차도 가려내야 한다. 재정적 어려움이 커 시설 재투자나 교사의 전문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의 교육은 '남을 이기고 반드시 승리해라.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는 경쟁심을 중요한 요소로 봅니다.함께 돕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면 학부형들이 나서 '내 아이 바보 만든다'고 항의하기 까지 합니다.아이들을 피라미드 구조 꼭대기에 밀어올리기 위해 안달인 셈이죠. 하지만 이젠 평생을 보장한다고 했던 명문 대학의 신화가 이제 깨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부모님들이 먼저 나서 아이를 공부 기계로 만드는 학원 대신에 '내 아이가 무엇을 원할까'하는 것을 고민할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간디학교를 나서면서 들려오는 한 선생님의 외침이다.

간디학교 연혁=94년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양희규(철학박사) 현 교장이 설립한 간디농장이 모태다. 간디농장은 인도의 지도자 간디의 사상을 실천하고자 톨스토이의 공동생산 공동체를 꿈꾸며 생활공동체로 시작했다. 여기서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등장하면서 대안학교로 발전했다.

97년12월 교육청 인가를 받았다.2001년 중고등학교가 분리됐다.고등학교에는 현재 교사 11명과 강사 등 15명의 교원이 있다.선생님들은 자발적으로 월급의 10%를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고 있다.나눔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교육 목표는 ▶전인적 인간 ▶공동체적 인간 ▶자연과 조화된 인간 ▶지정의가 조화로운 인간 ▶역사와 사회속에서 책임성 있는 인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 등 이다.

입학절차=매년 11월 20여명을 뽑는다.1차는 내신성적(30%),자기소개서(30%),학부모소개서(30%),추천서(10%)로 평가한다.2~3배수를 뽑아 2차 전형에 들어간다.2차 전형은 우선 2박3일간 간디학교 생활은 직접 경험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학생의 지원 동기다.중학교 학업 성적은 통상 중위권 이상이면 무난하다.학비는 일반학교와 같고 기숙사.급식비 등을 포함해 월 50만원 수준.

경남 산청=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