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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임정 법통·제2건국론의 함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5년전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상해 (上海) 임정 (臨政) 의 법통을 내걸고 제2건국론을 주장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도 3.1절 기념사에서 '이 정부는 3.1선열들에 의해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받드는 유일한 합법적 정부' 라고 규정했다.

역사란 흐르는 물과 같다.

단절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명예든, 오욕이든 나의 과거고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역사다.

그런데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집권만 하면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역사부정을 통해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다.

현대사는 되돌아볼 가치조차 없는 오욕과 불명예의 역사인가.

오욕의 역사는 팽개치고 영예의 역사만 이어받겠다는 뜻인가.

대한민국은 유엔감시 아래 민주적 선거절차를 거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임은 세계가 승인한 일이고 헌법에도 명시한 사항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건국의 법통을 흔들고 제각기 제2건국을 내세운다면 이는 5년 단위의 혁명을 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굳이 역사 단절론을 내세워 과거 정권과의 차별화를 한다 해도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승리한 4.19혁명의 결과로 나온 장면 (張勉) 민주당 정부는 어떤 논리로 부정할 수 있나. 군사쿠데타와 경제개발이라는 양면성을 띤 박정희 (朴正熙) 정권이 오늘 시점에 와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재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핵심 멤버들과 연대해 공동정부를 탄생시킨 지금 정부는 또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인가.

역사란 한 정권의 선전물이 아니다.

과거와의 단절 또는 차별화를 위해 외치는 정권 구호여서도 안된다.

김영삼 정부가 임정 법통을 이어받아 우리에게 어떤 영광의 역사를 남겼는가.

역사 단절론은 역사의 계속성과 유연성을 부정하는 혁명론적 발상이다.

정치지도자는 역사를 새롭게 세우려 들지 말고 겸허히 평가받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새 대통령의 제2건국론이 역사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시대가 열렸다는 뜻에서의 단순한 수사적 (修辭的) 설명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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