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윤감독 '눈감으면 보이는 세상'…독립영화 현실 엿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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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96년 5월 제작을 마치고도 아직 상영 못한 '눈 감으면 보이는 세상' 을 통해 한국 독립영화 현실 엿보기 - .좀 엉뚱한가.

이 영화는 신인감독 배경윤 (35) 씨가 제작.각본.연출.촬영.편집을 혼자 담당한 진짜 독립영화다.

보통 '저예산영화' 제작비의 절반도 안되는 1억3천여만원이 들었다.

그나마 모두 그가 조달한 것.

처음부터 '독립' 을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사마다 흥행성이 떨어진다며 거부한 탓이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맡았다.

영화아카데미 2기생으로 배창호.박철수 감독 밑에서 활동했고 대한항공과 자신의 프로덕션에서 기업 홍보영화를 제작하는 등의 경력을 가진 그였기에 자신감도 있었다.

힘들게 제작을 마쳤건만 이번엔 극장이 문제였다.

스타급 배우 대신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심지현.오광록 등이 주연이라는 점과 에이즈를 소재로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무거운 내용을 들어 영화를 내걸어 줄 극장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 그런데 외국서 이 영화를 인정한 건 무슨 '조화' 일까. 몬트리올.만하임 하이델베르크.카이로 영화제 등이 '눈 감으면…' 을 초청한 이유 말이다.

"그저 열정만 높이 평가한 것이었겠죠. 솔직히 잘 만들지는 못했으니까요. 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편집 때 마음에 안 드는 장면이 있어서 재촬영하고 싶어도 자본이 없어 어찌할 수 없었으니…. "

배감독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한다.

어쨌든 7일부터 열리는 제2회 서울 국제독립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극장개봉도 재추진 중이다.

"제작비를 건지려는 욕심은 없어요.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호된 비판을 받고 싶은 것 뿐입니다. "

앞으로도 계속 저예산영화를 찍겠다는 그의 한마디. "우리가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돈 보다는 창의성을 무기 삼아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게다.

그게 한국영화의 급소이기도 하니까.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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