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는 태안, 이웃이 손 잡아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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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안면도를 사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태안 전체가 무너집니다.”(박충근 천안지청장·사진 왼쪽)

“헬기를 띄워 상황을 파악한 뒤 남하를 저지하겠습니다”(진태구 태안군수·사진 오른쪽)

언뜻 들으면 전시 작전명령과도 같은 이 대화는 2007년 12월 7일 태안 만리포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나고 2주 뒤쯤 박 지청장과 진 군수가 나눈 것이다. 지역 행정을 총책임지는 군수는 물론이고 법질서를 책임지는 지청장도 검은 기름띠가 몽산포를 거쳐 안면도로 남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데 생각이 같았다. 안면도에는 풍광이 수려한 꽃지해수욕장과 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노력 덕분이었는지 기름띠의 마수는 안면도를 할퀴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5개월여가 흐른 5월 12일. 박 지청장이 다시 안면도를 찾았다. 천안지청장으로서 천안·아산과 인접해 있는 서산·태안의 대축제인 ‘2009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4월 24일~5월 20일)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두 지역을 관할하는 천안지청과 서산지청 산하 범죄예방자원봉사위원협의회(범방)가 합동으로 ‘법질서 바로 세우기 및 경제 살리기’ 협약(MOU)을 맺는 데 격려차 방문한 것. 통상 기업 간에 이뤄지는 MOU를 인접 지역 범방이 체결한 것은 처음이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와 복구 작업에 참여했던 박 지청장이 꽃박람회 개최 소식을 듣고 적극 추진했다고 한다. 검찰 내 조직폭력배·마약 수사의 계보를 이어온 강력통 검사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오후 2시 행사장 입구인 방포항에서 열린 협약식을 앞두고 박 지청장과 진 군수가 지역 범방 사무실에서 잠시 마주 앉았다.

박 지청장이 먼저 “기름밭 위에 꽃이 피었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에 진 군수는 “태안의 해안들이 기름으로 뒤덮일 당시 박 지청장이 나서 전국의 법무·검찰 가족, 범방 및 범죄피해자지원센터(범피) 위원들과 함께 수개월 동안 만리포 위쪽인 ‘개목항’에 캠프를 치고 복구 작업을 해 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인사했다.

MOU 체결을 적극 지원한 계기에 대해 박 지청장은 “두 곳의 지청장을 다 해 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태안이 꽃박람회를 통해 경제적으로 일어서려 할 때 이웃 지역에서 손을 잡아 주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관내 대기업들이 워크숍을 태안으로 가도록 유도하고 지역민들이 태안 지역 숙박업소·음식점에서 사용이 가능한 상품권을 적극 구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두 지역이 모두 개발도시라 유동인구가 많고 범죄율이 높은 편”이라며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꽃박람회를 통해 법 준수 정신을 전파하자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천안·아산은 중부 내륙의 공업도시인 반면 서산·태안은 서부 해안의 관광도시로 상생할 게 많다고 한다. 9월 천안에서 열리는 웰빙식품 박람회도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기회다.

진 군수는 “당시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수십억 개의 조약돌을 하나하나 손으로 닦아 기름을 제거하면서 태안의 기적,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까만 모래밭이 하얗게 변하는 기적은 지금의 꽃박람회로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최 측은 15일까지 166만 명이 박람회장을 다녀갔다고 밝혔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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