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문 파동, 퍼주기 논란, 삐라 살포까지 북한 문제만 생기면 토론 대신 싸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역대 정부에선 대북 문제 등을 놓고 진보·보수 갈등으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사례가 계속됐다. 우리 사회의 다원화 과정으로 보기에는 도를 넘었고 이제는 합리적 조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집권 초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씨를 북으로 송환했던 김영삼(YS) 정부는 ‘조문 파동’으로 남북 관계에서 발목이 잡혔다. 1994년 7월 남북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당시 이부영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조문단 파견 용의’를 물었던 게 발단이 됐다. 보수 진영은 극력 비난하고, 진보 진영은 조문을 불허한 정부를 강경 비판했다. 남에선 색깔론으로 비화됐고, 북한도 조문 불허를 이유로 남북 관계를 단절했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 교수는 “당시 조문 논란은 감정적 비난이 아닌 합리적 대안 모색으로 진행됐다면 남북 관계 악화가 최소화됐을 것”이라며 “조문 파동으로 빚어진 국론 분열은 결과적으로 YS 정부가 대북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를 없앴다”고 지적했다.

김대중(DJ) 정부 땐 집권 내내 ‘퍼주기 논란’이 계속됐다. DJ 정부 때 본격화된 대북 쌀·비료 지원을 놓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간엔 타협점 없는 공방이 이어졌다. 햇볕정책의 기능·한계에 대한 합리적 토론보다는 선악 논쟁에 가까운 이념 대립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선 2005년 9월 느닷없는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으로 한·미 관계에까지 파장이 번졌다. 그달 11일 전국민중연대 등 진보단체와 황해도민회 등 보수단체는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놓고 각각 ‘철거’와 ‘철거 반대’로 집회를 열고 투석전을 벌였다. 4일 후 헨리 하이든 의원 등 미 하원의원 5명은 “차라리 미국에 동상을 넘겨 달라”며 정부에 서한을 보냈고, 노무현 대통령이 “맥아더 동상은 (우리가 인정할) 역사”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남남충돌이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들이 임진각에서 대북 삐라 살포를 강행하자 진보단체가 극력 저지에 나섰다. 민주당과 자유북한운동연합 간엔 서로를 ‘매국단체’로 매도하는 비난전도 이어졌다. 두 달 전 북한이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삐라 살포가 계속되면 개성공단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대 조치를 예고했는데 북한의 진의 파악과 대응책 마련은 뒷전인 채 남남 갈등만 벌인 꼴이었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지금도 광복절만 되면 보수는 ‘김정일 타도’를, 진보는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며 따로 기념집회를 열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런 소모적 이념 대립을 계속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