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충절 성역화’ 영천이 나선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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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충절의 표상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92) 선생을 기리는 사업이 영천에서 본격화됐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위패가 있는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의 임고서원 전경.


영천시는 13일 선생의 위패가 있는 임고면 양항리 임고서원에서 121억원을 들이는 임고서원 성역화사업 기공식을 했다. 완공은 2010년 12월. 선생의 충·효를 후세에 알리고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영천시는 임고서원 주변에 유물전시관(419㎡)과 생활체험관(686㎡)을 짓고 충절의 상징인 개성 선죽교를 재현할 계획이다. 또 원형극장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만들고 주변을 정비하게 된다.

대규모 성역화사업이 시작되면서 포은 선생과 영천의 관계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포은선생숭모사업회가 펴낸 『포은 정몽주 선생』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영천은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고려 충숙왕 때 어머니(영천 이씨)의 고향인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로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해 조선의 성리학 토대를 마련했다. 또 향교를 세워 교육에 힘썼으며, 뛰어난 외교술로 명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 가 긴장 상태의 외교 관계를 회복하고 포로 수백명을 구하는 등 국난 극복에 앞장섰다.

13일 기공식을 한 임고서원 성역화사업 조감도. [영천시 제공]


임고서원에서 동쪽으로 2㎞쯤 떨어진 출생지 우항리에는 ‘효자리(孝子里)’라 새겨진 비가 세워져 있다. 선생이 부친상을 당한 뒤 묘소에서 3년상을 지내고 그 뒤 모친상을 당하자 다시 묘소에서 3년상을 치르면서 조정이 그 효성을 기린 것이다. 숭모사업회 이남철(76) 회장은 “선생이 충절은 물론 효행의 표본”이라고 강조했다. 선생의 부모 묘소는 임고서원 뒤편에 있다.

선생의 본관은 영일(연일, 또는 오천). 포항시는 그래서 포은이 포항 인물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영천시 문화재계 김병찬(41)씨는 “임고면에는 지금도 영일 정씨들이 2000호쯤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선생의 산소는 경기도 용인 능골에 있다. 선생의 20대 손인 정연웅(70·영일정씨포은공파종약원 사무국장)씨는 “선죽교에서 타살된 뒤 14년 만에 복권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사연을 설명한다.

선생은 개성에서 순절한 뒤 부근에 가매장됐다. 14년 뒤 복권되자 유해를 수소문해 영천으로 옮겨가게 된 것. 상여가 경기도 수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회오리가 일어 명정(銘旌, 망자의 관직과 성씨를 기록한 기)이 날아가 산에 떨어졌다. 그 자리는 그대로 유택이 됐다. 그때부터 숨어 살던 후손들이 인근으로 모여들었고 용인 모현면은 지금도 100여 호가 사는 집성촌이 됐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때인 1555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사액서원이다.

숭모사업회와 영천시는 앞으로 50명이 합숙할 수 있는 생활체험관에서 방학을 이용해 청소년들에게 충효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유물전시관에는 ‘임고서원 소장전적’ 10종25책(보물 제1109호)과 진주박물관이 보관 중인 ‘인조기사모본 정몽주 영정’(보물 제1110호) 등을 비치할 계획이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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