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계파 … ‘국민 실종’ 여의도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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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여의도 정치에 국민의 이익이 실종됐다. 4·29 재·보선 패배 뒤 여권은 반성을 약속했다. 하지만 보름 동안 한 일이라곤 “네 탓” 타령이었다. 청와대는 뒷짐만 진 채 이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고 소리를 높였지만 그 ‘우리’는 계파일 뿐이었다.

야당인 민주당의 쇄신도 뒷걸음만 치고 있다. 지금 유권자들이 투표지에 담은 호소는 온데간데없다. 공익(公益)이 사라진 정치에 민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여의도 외면하는 대통령, 이젠 정치할 때다”
MB의 침묵 옳은가

 4·29 재·보선에서 여권이 참패한 다음 날 청와대는 “공식 반응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국민 뜻을 살피겠다”는 의례적인 말조차 없었다. 반응다운 반응이 나온 건 6일 당·청 회동에서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는 우리 여당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마치 한나라당의 책임인 듯한 뉘앙스였다.

실제 청와대 움직임이 그랬다. 당의 쇄신 논의에 대해 “지켜보자”고만 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변화를 위한 노력도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이는 민심과 거리가 있다. 근래 여론조사에서 “밀어붙이기식 국정 기조를 바꾸라”(39%, 한길리서치)는 요구가 압도적이었다. 계파 갈등(20.9%)은 부차적인 문제로 여겼다. 참패의 원인을 두고도 정부 실정을 꼽는 사람이 더 많았다(56.8%, 리얼미터).

정치권 안팎의 진단도 같다.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많은 반성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김성식 의원)는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더 이상 여의도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강대 이현우(정치외교학) 교수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행정만 하려 하는데 이젠 타협과 이견 조정이란 정치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상득 의원을 겨냥한 비선 라인을 두고 한 여권 인사는 “이 대통령은 관리를 한다고 여기겠지만 정치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당·정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끼리끼리’ ‘특정 인맥 치중’‘지나친 논공행상’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우 교수는 “그간의 인사 원칙을 바꿔야 그 밥에 그 나물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정애 기자



“박근혜는 스스로 계파 수장으로 입지 좁혔다”
‘친박 무죄론’ 맞나

 “당 지도부는 재·보선에서 한 표라도 더 얻으려 애썼는데 지도자란 분이 나 몰라라 했다면 결국 도와주지 않은 것이다.”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심재철 대표가 13일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친박이 발목 잡은 게 뭔가”라는 샌프란시스코 발언에 대한 반박이다.

심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자신의 입지를 계파 수장 정도로 좁힌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나서 훼방하지 않았으니 할 일 다했다는 건 국가적 지도자로서 적절치 않은 말”이라고도 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론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보인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중립 성향의 권영세 의원은 “재·보선 참패는 1년 반 동안의 국정 운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당내 친이-친박 갈등에 대한 심판도 포함된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내 주류가 어려움 해결을 위해 손을 내밀 때 맞잡아 주는 것이 지도자의 태도”라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당과 정권이 어려움을 맞는다면 박 전 대표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박계는 반박한다. 영남의 초선 의원은 “주류 독식 상황에서 참여할 방법도, 마땅한 자리도 없는데 대체 박 전 대표가 뭘 하기를 원하나. 어려운 때마다 박 전 대표를 탓하는 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정권에 깊숙이 개입하고도 정권이 어려워진다면 더 이상 보수세력을 대변할 인물이 없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원로들은 이런 당의 상황을 우려한다. 윤여준 전 의원은 “논평과 반대만으론 국가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당과 나라의 상황이 급박해진 상황에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가영 기자



“민주당이 잘해 재·보선 이겼다는 여론 3%뿐”
‘정세균 승리’ 맞나

 4·29 재·보선 이후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수도권에서 승리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인재들이 우리 당에 노크할 것”(5월 7일 특보단 회의)이라며 연일 ‘승리’를 강조해 왔다. 반면 전주 패배와 광주·전남의 지방의원 선거 패배에 대해선 별다른 진단을 내놓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선 지방의원 선거 패배는 “공천 실수”(강기정 대표비서실장), 전주 패배는 “정동영 바람 탓”(김교흥 사무부총장)이라고 보는 정도다.

재·보선 민심을 읽는 민주당 주류의 시각은 정 대표의 행보로도 표현됐다. 정 대표는 김근태 상임고문(10일), 김대중 전 대통령(11일)과 잇따라 만났다. 자신이 추진 중인 ‘뉴 민주당 플랜’에 대해 설명하고 지지를 구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선 축소된 당권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발걸음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로 정세균 체제의 한 축인 친노그룹의 입지가 좁아진 데다, 정동영 의원(무소속)과의 공천 싸움으로 비주류와의 전선이 분명해지는 등 정 대표 리더십의 토양은 상당히 훼손됐다. “수도권 승리로 위기를 넘겼지만 출혈이 컸던 지도부가 노선이나 정책 개선보다는 당권 안정에 관심을 두고 움직인다”(재선 의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당내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무소속 강운태(광주 남구) 의원 등에 대한 복당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 같은 민주당을 보는 외부의 시선은 따갑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수석애널리스트는 “이번 선거 결과가 ‘민주당이 잘해서’라는 여론은 3% 정도에 불과하다”며 “옛 인물들을 끌어들여 당권 유지에 급급하기보다는 국민이 야당에 바라는 요구를 진지하게 파악하는 일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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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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