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경기 낙관론 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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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심리가 갈수록 더 얼어붙고 있다. 특히 고소득 층과 20대, 30대 젊은 층의 소비심리 위축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낮아지고 물가는 훨씬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6월 소비자 기대지수가 두달째 하락하며 92.2로 떨어졌다.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지수가 100 미만이면 6개월 후의 생활 형편이나 경기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전망을 좋게 보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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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어둡게 본 계층은 더 비관적이 되고,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기대를 했던 계층은 생각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간 기대지수가 100을 웃돌았던 월 소득 4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기대지수는 99.5를 기록, 두달째 100을 넘어서지 못했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 계층의 기대지수는 80대로 떨어졌다.

6개월 전과 현재 경기를 비교하는 소비자 평가지수도 67.3에 머물렀다.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비자들의 39%는 가계 수입이 줄었다고 답했고, 수입이 늘었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한국은행도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6%에서 5%로 낮췄다. 다만 연간으로는 당초 예상한 5.2%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하반기 중 3.9%로 급등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초 전망치인 2.9%를 크게 웃도는 3.6%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이날 '2004년 하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올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4%로 추정된다"며 "하반기에는 설비투자나 민간소비는 극심한 침체에서 서서히 벗어나겠으나 그동안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과 건설 경기가 둔화돼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특히 소비와 설비투자가 기대만큼 회복되지 못할 경우 4분기께는 경제성장세가 상당히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정례회의를 열어 7월 콜금리 목표를 현재의 연 3.75%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정경민.김영훈 기자

[뉴스 분석] 수출마저 흔들리고 고유가도 부담

한국은행이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춘 것은 경기에 대한 낙관론을 공식적으로 접었음을 뜻한다.

한은은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하반기에는 수출 호황이 지속되고 고용이 빠르게 느는 데다 설비투자도 서서히 회복돼 올해 경제성장률이 최고 6%에 이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2분기가 다 지났는데도 투자와 소비는 살아나지 않았고, 그동안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마저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수출은 미국 등 선진국과 중국이 경기 과열에 대비한 억제책을 쓰면서 활황세가 꺾일 가능성이 커졌다. 고유가도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 경제엔 큰 부담이다.

하반기에 믿었던 수출 신장세가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이자 한은은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설비투자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민간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만은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 기대심리를 보면 민간소비의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특히 그동안 소비를 주도해온 고소득층과 20대, 30대의 소비심리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내수침체에 수출둔화가 겹치면 경제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기업투자의 물꼬가 트이느냐가 하반기 경기회복의 관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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