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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스탠드 바이 유어 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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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여자로 사는 게 때론 힘이 들죠/한 남자만을 사랑하며/당신은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데/그는 희희낙락할 거예요/도무지 이해 안 되는 일을 하면서/하지만 그를 사랑하니까/용서해줄 테죠/…그의 곁에 서서 힘이 돼주세요’

1968년 발표된 태미 와이네트의 히트곡 ‘스탠드 바이 유어 맨(Stand by your man)’은 큰 인기와 함께 거센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남편이나 애인이 잘못을 저질러도 묵묵히 옆에서 도와주란 가사 내용이 당시 기세등등하던 여권 운동가들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이 노래는 92년 대선 후보 부인이던 힐러리 클린턴이 CBS ‘60분’에 나와 “난 와이네트처럼 남편 옆이나 지키는 여자가 아니다”고 선언해 다시금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정작 남편이 백악관 인턴과 성 추문에 휘말리자 그녀는 그의 곁에 딱 붙어 서서 힘을 주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 뒤로 성 문제로 말썽을 일으킨 정치인들 부인에겐 ‘힐러리처럼’이 전범으로 통했다. 성매매 스캔들에 휘말려 사임한 엘리엇 스피처 뉴욕 주지사의 부인 실다, 동성애자로 가장한 경찰에게 수작을 걸다 딱 걸린 래리 크레이그 상원의원의 부인 수전이 그랬다. 이혼 소송을 내긴커녕 기자회견을 하는 남편 옆에 다소곳이 서서 변함없는 지지를 과시했다. 그렇다고 노래 가사처럼 사랑해서 용서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미국을 넘어 ‘세계의 퍼스트레이디’라 불린 엘리너 루스벨트가 그런 ‘정치적 용서’의 원조 격이다. 그녀는 숨을 거둘 때 침대 곁에 ‘1918’이란 숫자를 남겼다 한다. 자기 비서와 남편의 불륜을 처음 알아챈 게 그해였던 거다. 그만큼 괴로운데도 꾹 참고 엘리너는 결혼을 유지하는 길을 택했다. 이후 뛰어난 수완으로 남편을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그가 세상을 뜬 뒤엔 유엔인권위원회 의장으로 맹활약하며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부인 라리오는 전혀 다른 길을 갈 모양이다. 18세 모델의 심야 생일 파티에 참석한 남편의 바람기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일로 신문 지면을 통해 사과를 요구했던 그녀는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이혼을 준비 중이라 한다. 극과 극으로 대응이 갈리는 건 미국과 유럽의 문화 차이로 봐야 할까. 아무튼 한눈파는 남편 때문에 속 썩는 정치인 아내들로선 ‘라리오처럼’이란 카드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