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파업철회…긴박했던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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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3일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파업이 철회된 데는 “국가경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는 여론의 압력이 큰 역할을 했다.

민주노총 사무실에는 12일 “제발 나라를 먼저 생각해 대국적인 결단을 내려 달라” 는 시민들의 전화 수백통이 온종일 빗발쳤다.

이에 따라 회의 초반에 강경노선을 견지하던 비대위 간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눈에 띄게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오전에 시작돼 자정무렵까지 계속된 민주노총 비대위 회의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한동안 팽팽하게 대립했다.

강경파는 “정리해고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합의안이 바뀌지 않으면 다 죽는다.

현장 조합원들 다 죽인 후에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라며 총파업 강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경제난을 심화시켜 모두가 공멸할 수는 없다” 는 온건파의 주장과 비판적인 여론, 불투명한 파업 성공 전망 등이 대두되면서 파업철회쪽으로 대세가 기울었다.

○…비대위 단병호 (段炳浩) 위원장은 이날 오후10시부터 네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연기한 끝에 자정쯤 집행부 10여명과 함께 5층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그는 5분간에 걸쳐 회견문 낭독을 마친 뒤 질문공세를 펼치는 보도진들에 “질문을 일절 받지 않겠다” 며 곧바로 퇴장.

○…현대그룹노조총연맹 (현총련) 은 12일 자정쯤 서울의 비대위로부터 '파업철회' 를 통보받고 노조간부 20여명이 모여 비상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 이들은 당초 민주노총이 파업방침을 철회하더라도 구조조정과 관련해 현대그룹측에 경고메시지를 주기 위해 13일 오후 1~2시간 정도 파업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막상 철회소식이 전해지자 "대세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 는 쪽으로 분위기가 반전.

○…파업이 철회됐다는 소식을 들은 중소 수출업체 사장 林모 (53) 씨는 “파국을 면해 천만다행” 이라며 “나라가 망하는 데도 파업하는 나라의 기업과는 거래를 안하겠다던 외국 바이어들이 다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고 기뻐했다.

외국계 B은행 문정환 (文晶煥.37) 부장은 “한국노조의 정확한 현실인식이 낳은 결과” 라고 반기며 “이를 계기로 한국이 경제위기를 돌파하면 좋겠다” 고 말했다.

사회부·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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