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서 주경야독 최창균, 등단 16년 만에 첫 시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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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경기도 파주에서 젖소를 키우며 농사 짓는 시인 최창균(44)씨가 1988년 등단 후 16년 만에 첫 시집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창비)를 펴냈다. 5일 오후 파주시 교하면 동패리 최씨의 젖소 농장을 찾았다. 어쩌다 시를 쓰게 됐는지, 첫 시집은 왜 그리 늦어졌는지 궁금했다.

최씨는 자신을 "천상 농사꾼"이라고 소개했다. 농장에서 멀지 않은 고양시 덕이동에서 태어난 최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열한살 때 아버지가 지게를 만들어 주었다. 인근 동리에 장사로 소문이 날 정도로 힘이 좋아 중학교 3학년 때는 이미 20대 청년 몫의 일을 거뜬히 해냈다.

최씨는 "그래도 책 읽기를 좋아해 중학교 1.2학년 무렵 시인이 되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졸라 뒤주의 쌀을 몰래 팔아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넣었고, 심지어 남의 집 화장실에 쌓여 있는 '창작과비평''현대문학' 등 계간지를 가져다 읽기도 했다. 미꾸라지.버섯도 돈이 되었다. 1만평이 넘는 논.밭 농사에 한창 때 200마리가 넘었던 젖소 농장을 꾸려가는 틈틈이 시를 쓰는 일은 수월치 않았다. 하루 16~18시간 농사일에 매달리고도 밤새 시를 쓰곤 했다. 최씨의 수고로운 시편들에 농촌 현장이 배어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최씨는 연작시인 '소 2 인공수정'에서는 소와 사람 모두 마음 편치 않은 인공수정을 그만 하고 싶다고 노래했다.

짧은 시 '사랑'에서는 최씨의 범상치 않은 눈썰미가 드러난다. "햇빛 반 어둠 반/마주한 시선의 어루만짐이 노을의 절정/타는 눈 속으로 타들어가는 눈의 황홀경/저 놀라운 눈을 뜨는 것이 사랑이다/해 넘어간다 해 넘어간다/저 애절한 시선이 사랑이다".

정작 최씨는 '오동나무''두릅나무''둔덕 나무' 등 '나무시'들을 모아놓은 2부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글=신준봉,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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