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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입양아와 진돗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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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가수 조영남씨에게서 딸 은지를 입양할 당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늦은 저녁, 아내가 아기를 봐뒀다는 영아원으로 갔어요. 원장이 나한테도 맘에 드는 애가 있는지 한번 둘러보라더군요.” 복도를 따라 걷는데 뒤에서 보모들이 소곤거렸다. “은지가 됐으면 좋았을 걸.” “몇 달 있으면 고아원으로 가야 하잖아.” 첫 번째 방문을 열었다. 들어서려는 순간,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땅 때렸다. ‘애가 무슨 고무신인가, 예쁘면 골라 가고 미우면 외면하게.’ 원장실로 되돌아가 물었다. “은지란 아이는 어디 있나요?” 다섯 살, 고아원에 갈 처지이던 꼬마는 이렇게 그에게로 와 ‘조은지’가 됐다. 벌써 15년 전 일이다.

옛 사연을 새삼 꺼내는 건 오늘이 ‘입양의 날’이어서다. 1990년대만 해도 ‘다 자란 아이’를 공개 입양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요즘은 세월이 변해 국내 사례의 절반 정도는 완전 공개 입양이다. 더 큰 변화는 2007년부터 국내 입양이 해외 입양 건수를 소폭 앞지른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국이 세계 5위권의 ‘아기수출 대국’임엔 변함이 없다. 1958~2007년 해외 입양인 16만여 명. 누적 통계론 세계 1위다.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도 매번 정체성을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 고통”(입양인 브룩 뉴매스터) 속에 살아온 이들에게 모국은 가해자다. 스웨덴의 입양인 출신 사회학자 토비아스 후비네트(한국명 이삼돌)는 “과거 한국 정부는 해외 입양을 통해 막대한 복지 비용을 줄이고 건당 4000~7000달러의 수수료까지 챙겼다”(『해외 입양과 한국 민족주의』)고 비판한다. 자신들을 버린 건 생모가 아닌 국가라는 인식이다. 이들의 바람은 뜻밖에도 국내 입양 확대보다 미혼모 지원이다. 해외 입양아의 99%는 미혼모 자녀다. 오죽하면 미국 입양인 작가 제인 정 트렌카가 “한국은 진돗개 수출마저 금지하는 나라다. 미혼모 아이는 개보다 못하단 말이냐”고 쏘아붙였을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 딸을 입양한 미국 의사 리처드 보아스의 선택은 특별하다. 한때 ‘버려진 한국 아기’의 미국 입양을 후원했던 그는 지금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다. 그는 묻는다. “아이에게 생모의 보살핌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요?” 입양의 날, ‘입양 없는 날’을 꿈꾸며 우리 사회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 아닐는지.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