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서로를 인정해 주면 대화 의외로 쉽게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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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케미칼은 2004년 롯데그룹이 인수한 후 2005년부터 지금까지 무분규로 임단협을 진행해 왔다. 2006년에는 약 120명이 희망퇴직을 했지만 무분규를 유지했다. 지난해 6월엔 항구적 노사평화선언을 했고, 2009년 3월엔 임금동결을 일찌감치 합의했다.

화섬이나 PET병의 재료로 쓰이는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케이피케미칼의 2008년 매출액은 약 2조 1000억원, 제품의 90% 이상을 해외로 수출됐다. 이 회사의 허수영 대표는 “석유화학 업계는 지난해 부터 경기가 나빠졌는데 노조에서 이를 이해하고 항구적 노사평화선언을 해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한결 짐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Q. 항구적 노사평화선언이 어떻게 나왔나.

“2004년 인수 후 노조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역할도 인정해 준 것이 쌓여서 됐다. 여러 가지 조건이 중요할 걸로 생각하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인정해 주면 의외로 대화가 쉽게 풀린다. 석유화학업계는 지난해부터 어려웠다. 노조도 한번 회사를 잃고 고생해 보니 회사가 살지 않으면 노조도 존재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롯데그룹이 인수하면서 근로조건 차츰 나아진 점도 작용했다.”

KP케미칼은 1980년대 고합그룹의 계열사로 설립됐다. 이후 대부분의 사업장이 그렇듯 87년 민주화 이후 매년 파업을 하는 회사가 됐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 직후 고합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2004년 롯데 그룹에 인수 될 때까지 채권단 관리하에서 주인 없는 회사로 남았었다. 7~8년을 투자 없이, 처우 개선 없이 지내면서 회사의 중요성을 절감한 셈이다.

Q. 2006년 120여명이 희망퇴직을 했는데도 분규가 일어나지 않았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우리 회사의 인당 생산성을 경쟁사와 비교했다. 객관적인 자료로 설득했다. 중국 공장 설립 계획 등 해외 프로젝트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경쟁력을 가지지 않으면 회사가 살아 남을 수 없지 않은가 .”


Q. 제도적으로,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해야 노조와 대화가 되고 신뢰를 얻을 수 있나.

“우선 관리직 사원에게 노조와 현장 근로자에 대한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관리직이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면 생산직원들이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생산 공간과 사무환경도 개선했다. 물론 급여 등 처우도 점차 그룹내 다른 회사와 격차를 좁히고 있다. 경영계획수립이나 팁장급 이상 워크숍에 노조 위원장도 참석한다. 분기별 경영실적은 전 사원을 대상으로 설명했다.”

Q. 강경노조 때 보다 더 잘해줘야 된다는 말인가.

“서로 이해하고 양보할 때 더 잘해줘야 된다. 의료비 지원 등 각종 복리후생은 물론이고 사택도 리모델링해서 재입주했다. 입주할 때는 내가 직접 쓴 축하 메시지와 꽃도 보내줬다. 생산직은 이때까지 직급이 없었는데 지난해부터 계장, 대리 직급을 신설했다. 사무직은 때가 되면 승진하는데 20년 근무한 생산직은 여전히 사원이다. 자녀들에게도 멋적을 수 있다. 이렇게 별 것 아닌 것들을 잘 챙겨야 한다.그렇다고 무작정 잘해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직에 직급을 신설하면서 회사는 생산직을 평가할 수 있도록 노조와 합의 했다.”

Q. 노조와 대화는 자주하나.

“격식을 갖춘 만남 보다 일상적인 대화가 중요하다. 2주에 한번씩 공장에 가는데 갈 때마다 노조위원장과 간부들과 식사한다. 같은 식구인데 일정 잡고 격식차릴 필요 있겠는가.”

허 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좋아 직원들에게 작지만 보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회사의 실적을 직원과 함께 나누는 것이 노사 화합의 기본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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