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문제는 노사에게 맡기는 게 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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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주목받은 건 2002년 5월이었다. 2년여 동안 노·사·정 간에 줄다리기를 하던 ‘주 5일 근무제’가 무산된 직후다. 당시 금융노조위원장이던 이 전 위원장은 금융계 경영진과 협상해 전격적으로 주 5일 근무제 시행에 합의했다. 금융부문에서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자 전 부문으로 확산됐다.

이런 전력이 발판이 돼 그는 2004년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이어 2006년 3월 노동계 판도를 바꾸는 선언이 나왔다. 그는 한국노총 60주년 기념식에서 “전투적 투쟁을 버리고, 합리적 노동운동으로 노선을 전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명성 대결을 하듯 길거리 투쟁만 일삼다가는 명분은 물론 실리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000년과 2001년 불법파업을 주도해 구속되기도 했다. 강성 이미지를 가진 이 전 위원장의 이 선언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지난해 한국노총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우리은행 조사역으로 근무중이다.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Q. 예전 상업은행 노조부위원장(1983년)으로 재직하면서 육아휴직제를 처음 도입했다. 이후에도 주 5일 근무제와 같은 정책 개발이나 제도 개선에 애착을 보였는데.

“당시만해도 여성들은 결혼하면 퇴직한다는 각서를 쓰고 은행에 들어왔다. 그런데 여성인력을 보조에서 주역으로 키우지 않으면 기업의 발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그 얘기를 꺼냈을 땐 모두 반대했다. 인사부 대리부터 과장·차장·임원·사장까지 차례 차례 설득했다.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85년 상업은행에서 시행되고 4년 뒤 제도화됐다. 제대로 된 제도개선은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기에 노조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Q. 불법파업으로 두 번이나 구속됐다. 그건 합리적 노동운동과 거리가 먼 행동이 아니었나.

“당시 투쟁 대상은 국제통화기금(IMF)이었다. IMF가 외환위기 이후 원칙도 없이 무조건 금융기관을 합병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면서 예금자보호 한도를 2000만원으로 제한했다. 그것에 저항한 것이다. 이후 예금자보호한도가 5000만원으로 올랐다.”

Q. 월드컵 유치활동이 활발할 때 FIFA에 ‘한국이 개최하게 되면 노조가 적극 돕겠다’는 편지를 보냈는데.

“한국노총 조직국장으로 있을 때다. 월드컵 유치가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그래서 노총에 ‘유치희망서를 FIFA에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다들 ‘노조가 무슨 그런 일을 하느냐’며 면박을 줬다. 결국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한국노총이 적극 협조할 것이다. 그 기간 동안 한국에 노조의 투쟁은 없을 것이다’는 요지로 내가 작성해서 보냈다. 국민을 위하고 조합원을 위하는 일, 그것이 노동운동이다.”


Q. 이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의 정책연대를 맺은 당사자다. 지금 양측 간에 정책연대가 제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나.

“정책연대를 한 것이지 권력연대를 한 것이 아니다. 정책연대가 제대로 되려면 정책·기획·조정 기능이 활발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보인다. 대안을 내놓고 정책의 화두로 삼아야지, 무슨 일방통행도 아니고, 무조건 안된다고 하면 떼쓰는 모양새 밖에 더 되겠는가. 대안은 없고 성명만 남발하고 있다.”

Q. 노사자율주의를 입버릇처럼 강조해왔는데.

“노사문제는 노사 당사자에게 맡겨두는 게 순리인데 그동안 우리 정부는 사사건건 개입했다. 이러다보니 제대로 된 노사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예컨대 직업훈련을 노사가 공동으로 하면 회사나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도 노조의 의무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런 작업도 모두 정부가 한다. 노사가 할 게 없다. 정부는 노사가 밭을 갈고 수확할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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