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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실만 있고 임종실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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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세상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곳, 임종실. 강남성모병원의 임종실에서 한 호스피스가 임종환자를 떠나보낸 뒤 침대를 붙들고 생각에 잠겨 있다. 국내 유일의 임종실인 이곳은 햇빛과 함께 바깥 공기가 가득 들어오도록 설계돼 있다. 환자와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조용철 기자]

국내에선 줄잡아 한해 평균 3만명의 암환자가 병원에서 숨진다. 전체 암 사망자의 43.5% 선이다. 여기다 일반 환자까지 포함하면 병원에서 숨지는 사람의 숫자는 크게 늘어난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평안하게 영면할 수 있는 공간(임종실)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임종실(dying room)이 있는 곳은 강남성모병원뿐이다.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국립암센터 등 내로라 하는 병원도 임종이 예상되면 중환자실이나 1인실로 옮길 것을 권유하는 게 고작이다.

서울대병원 허대석(내과)교수는 "우리 병원(1500병상)의 경우 매일 두세명이 숨지는데 대부분 2~6인실에서 함께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지켜본다"며 "이때 주변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공포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영안실을 보유한 한국에 임종실이 없는 것은 겉치레 문화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중순 오전 9시쯤 서울대병원 6인용 병실. 폐로 퍼진 암(육종) 때문에 입원한 K군(18)의 증세가 갑자기 악화됐다. 의료진은 늑막의 물을 빼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소변도 나오지 않았다. 오후 2시 이후엔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해 혈압을 올리는 약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다. 오후 11시쯤 호흡이 멎고 심장 박동이 중단됐다. 당직 의사가 바로 달려와 인공호흡을 하고 가슴을 반복해 눌렀으나 심장 박동은 잠시 돌아오는 듯하다 이내 멈췄다.

이때가 오전 1시. 환자의 부모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K군과 함께 지난 몇주간 같은 병실에 있었던 환자와 가족 중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이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입원실에서 나와 복도를 서성거렸다. 반면 거동이 불가능한 세명의 환자와 일부 가족은 눈을 감은 채 애써 외면했다. 흰 시트에 덮인 K군의 시신은 한동안 병실에 남아 있다 오전 4시쯤 병원 직원이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K군과 같은 방에 있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은 이날 밤을 꼬박 새웠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다른 환자가 새로 입원해 그 침상에 눕는 광경을 씁쓸히 지켜봐야 했다. 다른 병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현재 병원 등 80여곳에서 호스피스센터를 운영하지만 임종실 설치 기준은 없다. 호스피스센터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봉사하는 곳이다. 반면 미국.일본.대만 등에선 대형 병원이나 호스피스센터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과장은 "임종실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병원도 수익성이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말기 환자의 임종 관련 비용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강남성모병원에선=1988년부터 호스피스의 16개 병상 중 한개를 임종실로 운영 중이다. 병실 이름은 '임마뉴엘'.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 대신 밝고 활기차게 내부를 꾸몄다.

보통 임종 7~8시간 전에 이곳으로 옮겨 임종 뒤까지 돌봐준다. 임종실 비용을 추가로 환자 가족에게 부담시키지 않는다.

호스피스를 전담하는 최혜란 간호사는 "임종하는 분의 종교와 관련된 음악을 틀어준다"며 "자신의 방이나 침대에 누워 있는 느낌이 들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환자의 호흡이나 심장 박동이 멈춰도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는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따뜻하게 돌봐준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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