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I 연구단’ 분석 … 전염성 강해도 독성은 약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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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01면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에 치명적 독성이 있는 고병원성으로 볼 만한 유전자 구조가 없다는 국내 연구결과가 나왔다. 신종 플루가 전파 속도는 빠를지 몰라도 인체에 미치는 위험을 크게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신종 플루 유전자 구조 고병원성 아니다

본지가 9일 단독 입수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대유행 대응 연구단의 ‘신종 플루와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신종 플루의 유전자 구조에는 치명적 독성(고병원성)을 보일 만한 특이 요인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에도 국내외의 일부 전문가가 비슷한 의견을 밝혀 왔지만, 이를 뒷받침해 주는 과학적 설명이 없어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연구단 책임자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부하령 박사는 “기존에 높은 사망률을 보였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은 고병원성임을 추정할 수 있는 특이한 유전자 변이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 신종 플루에는 그런 변이 구조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나라에 사망자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독 멕시코에 사망자가 많은 것은 사회학적인 문제 때문으로 추정했다.

이번 분석에서 신종 플루와 비교 대상이 된 주요 고병원성 인플루엔자는 ▶1918년 전 세계적으로 2000만~50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독감(H1N1)과 ▶97년 홍콩에서 조류가 아닌 사람에게서 첫 희생자를 낸 AI(H5N1) ▶2004년 이래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중국 등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AI(H5N1)다. 그 외의 다른 고병원성 인플루엔자들도 이들과 비슷한 특징이 있다.

부 박사는 “현재까지의 국내외 감염 속도를 볼 때 신종 플루의 전파력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진짜 팬더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이 되려면 병원성이 어느 정도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뜻밖의 고병원성 요인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지금으로선 팬더믹의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 박사는 “그러나 고병원성 인플루엔자와 결합해 변이할 경우엔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며 “이를 대비한 백신 개발 연구도 이미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단은 고병원성 인플루엔자의 유행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백신 개발을 위해 지난해 12월 출범한 6년짜리 장기 프로젝트 팀이다. 부 박사 외에도 충남대 김철중 교수, 서울대 김재홍 교수, 국제백신연구소의 송만기 박사, 포스텍의 성영철 교수, 연세대의 성백린 교수, 충북대의 최영기 교수 등 국내 인플루엔자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기초기술연구회(이사장 민동필)가 선정한 ‘국가 어젠다 프로젝트’ 5개 과제 중의 하나로, 올해에만 약 30억원이 연구에 투입된다.

부 박사는 “감염질환 전반에 대한 연구 투자도 척박한 국내 상황에서 인플루엔자와 관련해 이렇게 대규모 합동 연구사업이 시행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변종 인플루엔자에도 사용할 수 있는 소위 ‘유니버설 백신’을 만드는 것이 연구단의 최종 목표”라며 “우선은 신종 플루가 기존의 고병원성 인플루엔자와 결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변이 가능성을 고려해 백신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9일(현지시간) 현재 신종 플루 감염자는 29개국에서 3440여 명이라고 공식 집계했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48명(멕시코 45명, 미국 2명, 캐나다 1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총 3명의 감염이 확인됐으나 증상이 가벼워 격리 치료 후 모두 일상생활로 복귀했다.



▶고병원성이란=감염성 질환의 매개체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환자나 동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큰 경우를 말한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경우 감염된 닭이 75% 이상 폐사하면 고병원성이다.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사람은 치사율이 10% 이상이면 고병원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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